반려견에게는 천국인 프랑스
강아지는 응급실 가면 5분 안에 진찰해 주지만 사람은...
우리 집에는 5월이 되면 13살이 되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조이'이고 비숑 프리제이다.
아이가 7살 때부터 동생을 낳아주던지 강아지를 기르게 해달라고 졸랐었다.
동생을 낳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으로 합의를 봤었더랬다.
그렇게 조이는 단풍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 우리 집으로 왔다.
3개월이 갓지나 너무 커버려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다는 강아지가 있대서 우리가 데리고 오자. 결정을 하고 데리러 갔는데 얼마나 조그맣고 여린 아기던지
무엇을 보고 너무 많이 컸다고 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품에 안으니 나에게 폭 안겼던 그 첫 순간을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은 5.6 킬로그램에 한 번씩 미운짓을 할 때면 그 순간을 떠올리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유학 첫해 이탈리아로 갈 때는 우리 조이를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들어가기로 한 아파트 주인이 말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피아노 연습도 할 수 있고 강아지도 키울 수 있다고 해서 그 집으로 계약한 것인데 출국 며칠 전 갑자기 말을 바꾸었던 것이다.
피아노 연습도 안되고 강아지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계약위반이지만 우리는 일단 학교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 조이를 한국에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조이가 없는 1년의 유학생활은 낯선 곳에서의 힘듬도 있었지만 조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두고 왔다는 죄책감이 상당했다.
조이는 친정언니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이미 거기도 강아지가 한 마리 있던 터라 아마 우리 조이는 쭈구리가 되었었던 것 같다.
예방 접종 하는 것 외에는 병원을 가본 적이 없던 우리 조이인데 결막염, 귓병을 달고 살았고 사료에 그렇게 기호성이 좋지 않아 배가 고파 거의 아사 직전까지 가야 밥을 먹던 애가 사료를 먹고 또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 갈 때는 무조건 무조건 조이를 데리고 가야겠다고 결심을 해서 집 구할 때마다 강아지가 같이 살 수 있는지를 제일 먼저 체크했었다.
그럴 때마다 프랑스 집주인들은 왜 물어보지? 당연한 거 아니야? 하는 표정으로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었다.
그렇게 우리 조이는 프랑스에 입성하게 되었고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
아이와 조이와 외출을 한 날.
너무 더워서 우리는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 마시기 위해서 카페에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직원이 커다란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뭐 하는 물이지? 손 씻으라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물은 조이를 위한 물이었다.
" 너희 강아지 목마르잖아?" 하면서 휘리릭 가버리는 뒷모습에서 받은 문화충격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물을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은 사람 물보다 조이물을 먼저 갖다 주는 것이 아닌가.
몇 달 전에 조이가 공놀이를 너무나 열심히 한 나머지 다리를 접질렀는데 수의사 선생님 말씀이 십자인대가 늘어나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웬만하면 엑스레이도 잘 안 찍어주는 나라에서 수술을 하자고 하니 정말 해야 하나 보다 생각하고 수술을 시켰다.
깁스를 하고 퇴원을 했는데 진통제를 맞혔다고 했는데 너무 아파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병원에 전화를 하고 새벽 1시에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 조이가 다니는 병원은 24시간 진료를 하는 병원이다) 도착하자마자 상태를 체크하고는 진통제 한방을 더 놔주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또 문화충격이었다.
왜냐하면 프랑스 응급실은 진료 보는 데에 오래 걸리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응급실 가면 기본 6시간 7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서 웬만하면 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경험이 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정말 틈 없이 빼곡히 나서 급하게 응급실을 갔는데 가렵지는 않다는 이유로 뒤로 밀리고 밀리고 6시간 버티다가 그냥 포기하고 나온 적이 있다.
의사가 계속 미안해 미안해 너보다 더 급한 환자가 들어왔어. 하길래 저쪽을 보니 토하고 있는 임산부가 왔고. 또 다음엔 내 차례라고 하더니 또 미안해 미안해하면서 사과하길래 봤더니 저쪽에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이 있고.
에효. 포기하자 하고 그냥 아들이랑 집에 온 적이 있다.
가렵다고 할걸. 괜히 가렵지는 않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네라고 후회했던 밤이었다.
5분 만에 주사 맞고 나온 조이가 부러웠었다.
요즘은 한국도 반려문화가 많이 발전되고 정착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예전에 우리가 한국에서 조이를 키울 때는 여행을 가도 반려견이 동반되는 펜션도 많지 않았었고 특히 식사 문제가 항상 힘들었었다.
강아지가 함께 식당에 들어갈 수 없으니 조이를 혼자 차에 놔둬야 해서 그렇게 하기 싫었던 우리 가족은 맛집을 별로 다니지 못하거나 아니면 조이를 친구집에 맡기곤 했었다.
지금 조이는 식당이든 호텔이든 같이 갈 수 있다.
아주 고급 레스토랑은 반려견이 함께 갈 수 없는 곳도 있지만 우리는 사실 그런 곳에 갈 일이 별로 없다.
우리 조이가 제일로 좋아하는 것이 다 같이, 함께 하는 것이다.
아빠도 있고 형아도 있고 엄마도 함께 있는 것.
기차로 여행을 갈 때도 지하철을 탈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조이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
단 한 군데. 형아 연주회 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집에 혼자 두고 가는데 오히려 분리 불안이 없어져서 인지 잘 기다린다. 어느 날은 자느라 불러도 금방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아침에 짧게는 1시간 길게는 2시간 반 코스를 산책을 하고 중간중간 집 밖으로 배변하러 나가고 밤에는 잠자기 전 가벼운 산책을 하고.
조이가 하루에 밖에 나가는 횟수는 거의 4번 5번이다.
형아 시간 날 때에는 파리에 강아지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으로 놀러도 가고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 마다 예쁘다 예쁘다 해주고.
우리 조이가 살기에는 여기는 천국임이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음...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차차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특히 불어 잘못하는 동양인 여자가 파리에서 살아내기는 무척이나 힘들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