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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 Apr 07. 2024

둘째 조카가 내일 입대한다.

언니가 더 원망스럽다. 하지만 결국 다 내가 만든 관계들

나에게는 조카가 둘이 있다.

큰 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내 품에서 길러졌다. 나는 그때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상태였는데  직장 다니는 언니와 형부를 대신해 나와 남편이 길러주게 되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평일에는 온전히 우리 부부가 조카를 돌보고 주말이면 언니와 형부가 오셨다.

그럼 그때 우리는 주말을 온 가족이 함께 보낼 때도 있고 우리 부부가 일정이 있을 때는  언니랑 형부 조카 그렇게 셋만 우리 집에 남겨두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평일 내내 우리와 함께 지내던 조카는 우리를  부모로 인식을 해서일까  주말 동안 제 엄마 아빠의 품에서 많이 보채고 울고 했다고 했다.

그러다  조카가 돌 때쯤 되었을 때 엄마 아빠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래서일까. 정말 낳은 정 보다는 기른 정이어서 일까.

조카는 이상하리 만치 나와 더 잘 통하고 성향도 더 잘 맞는 부분이 많았다. 조카는 이모부도 정말 잘 따르고 우리 집 큰딸 노릇을 해주었다.


그 얘기인즉슨  제 엄마와는 별로 통하는 것이 없았다는 말이 된다.. 언니와 조카는 항상 사사건건 부딪혔고 조카가 하는 행동을  언니는 다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조카가 원하는 것은 언니는 이해할 수 없다고 나에게 하소연을 많이 했었고 조카는 엄마는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며 답답해했었다.


그 사이에 둘째 조카가 있다.

정말 아들이어서였을까. 아니면 그즈음쯤에 형부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던 터라 그 마음을 둘째 아이에게 쏟아서일까.

아니면 큰아이는 제 손으로 안 키우고 둘째는 제  손으로 키워서일까.

언니는 둘째에게는 맹목적이었다.

엄마가 동생에게는 무한정 너그럽고 자상하고 본인에게는 너무나 엄격하고 냉정하게 대한다는 사실을 큰아이가 자라면서 느껴버렸다.

자신은 항상 동생이랑 차별받는다며 엄마는 동생에게는 마음을 주지만 자기에게는 마음을 주지 많는다며 많이 서러워하며 자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지 않다며 항상 큰애를 달래주고 안아주지만 내 눈에도 그게 보이는데 직접 살부대 끼고 살고 있는 아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어느 날 언니에게 큰아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 적이 있다.

언니는 너무 마음 아픈 말을 했다

" 큰 애는 조카 같고 둘째만 자식 같다"라고 말이다


생후 한 달 만에  본인들 사정에 의해서 이모 집에서 이모품에서 자란 우리 큰 조카가 마음으로 너무 가여웠고 그 마음에 혹시 상처를 입을까 봐 조심조심하며 사랑을 주고 애정을 주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조카와 언니의 갈등은 말도 못 하게 커졌고 둘 다 서로에게 너무 상처를 주고 있는 걸 볼 수가 없어서 형부에게  큰 조카애를 나에게 달라고 했었다. 이름도 호적도 안 바꿀 테니 내가 키우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건 안된다 하셨다.

그러면 그렇게 상처받게 하지 말라고 내가 애원했었던 적이 있다.


그 사이에 엄마의 엄청난 보호와 사랑 안에서 본인 밖에 모르며 모든 걸 엄마 등뒤에 숨어서 해결하며 자라는 둘째 조카를 마냥 이뻐할 수만은 없었다.

물론 둘째 조카가 왜 안 이쁘겠냐만은 둘째가 혼나야 하는 상황도 큰애를 혼내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아팠다.

언니의 성격을 잘 알기에 거기서 내가 개입을 할 수도 중재를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나중에 따로 큰아이의 얘기를 들어주며 엄마가 성격이 급해서 그렇지 마음은 원래 이렇다 하며 언니를 해명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몇 년 전 둘  조카가 중3 때 내가 살고 있는 파리를 혼자 온 적이 있다.

내 마음에는 둘째 조카에 대한 미움과 사랑이 공존했지만 둘째 조카는 항상 나를 많이 따랐었다.

중 3짜리가 혼자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와서 학교 다니느라 바쁜 형아 대신 나와 3주를 여행했었다. 파리 곳곳을 누비고 몽셍미셀도 가고 에트르타도 가고


여행도중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엄마의 맹목적인 그런 사랑이 자신은 너무 힘들다고

그렇지만 엄마가 화를 내기 때문에 그걸 거절할 수가 없다고

이모한테는 자신의 속 마음을 다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이모라고

내가 가끔 한국을 가면 이아이는 나에게 참 많은 말을 했었다. 특히 새벽에  아이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들어가 보면 안 자고 있다가 나에게 주절주절 속 얘기를 많이 하곤 했었다.


그때 둘 조카의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온전히 사랑을 다 주지 못했던 것에 많이 미안했었다.

어느 날  둘째 조카에게서 보이스톡이 왔다. 얘가 나에게 전화를 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머리를 감는 도중이었지만 물을 뚝뚝 흘리며 전화를 받았다. 이유도 말하지 못한 채 대성통곡을 하길래 한참을 들어준 후에 물어봤더니 엄마와 트러블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우리 둘째 조카가 내일 군대를 간다.

어느새 커서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군대를 간다.

카톡으로 잘 다녀오라고 이모가 너 사랑하는 거 알고 있지? 했더니  잘 알고 있단다.

작년에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한 번을 못 봤다.

다행인 건 그나마 내 마음에 정말 다행인 건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지가 원하는 옷 몇 가지를 사줬다는 것이다.

아마 그 시간마저 없었으면 나는 지금 정말로 많이 슬펐을 것이며 나 자신이 많이 미웠을 것 같다.


언니를 흉보고자 함이 아니다.

본인 때문에 가족들이 힘들어하면 한 번쯤은 그 얘기에 귀 기울여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가득해서이다.

조카인 우리 아들이 뭘 하는지 안 보이는 한쪽 눈으로 피아노를 치며 살기 위해 이 먼 곳에 와서 얼마나 애쓰며 살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냥 내가 언제 애를 두고 한국에 들어오나. 그것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 마음도 주지 않는 언니이다.

내가 많이 지쳤다고 마음을 알아 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내 마음도 많이 담담해졌다.

단지 조카애들을 마음껏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힘들어할까 봐 그 부분이 염려가 될 뿐이다.

작은 조카애와는  잘 다녀오라고. 이모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라고 마음을 잘 나누었다.


이런 시간들이 안타깝지만 아이들이 많이 크고 성숙해져서 오히려 마음 나누기가 편안해졌다.

ㅇㅇ야. 건강히 몸 조심히 잘 다녀오너라.

              이모는 언제나 네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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