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꾸준함이 총명을 이긴다.
-양응수
멀더와 한국어 수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2003년 11월 중순에 작별하고 2005년 10월 10일에 다시 만난 그다음 주에 바로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이대역 근처 어학 카페 아이하우스. '언제'가 무슨 뜻인지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서 바라보던 창문도, 얼떨결에 앉은 낡은 소파도 그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과 나무 문도 여전한 그곳에서 말이다. 나는 여전히 증명사진 크기만 한 화면의 2G 폰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종이사전보다 가벼운 전자사전을 가지고 다녔으며 그해 봄 장만한 디카(디지털카메라)도 구비(?)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공간에서 한국어 수업을 도와주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멀더는 나와의 한국어 수업을 당연한 사실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전에 석 달 반 정도 잠시 자원봉사처럼 한국어를 알려준 외국인이 같은 장소에 다시 나타나리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당시 활동가들이 사용하던 게시판에 글을 올렸더니, ' (브레드) 피트'가 '멀더'로 기억하고 있었다.
멀더가 들고 온 가방 안에는 미국에서 2년 동안 혼자 공부한 책과 공책이 수북이 나왔다. 단어 카드를 검정 비닐봉지에 넣고 다니던 그는 그래도 이제는 공책 한 곳(?)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전기밥솥(rice cooker) 전자레인지(microwave) 선풍기(fen) 가위 옷장 다리미' 등등 기초 한국어 단어였다면, 이제 멀더의 한국어 어휘는 '난장판' '계급사회'에 이어 비평문에 나올 법한 '신랄한 풍자'에 이르러 있었다. 공부란 무엇인가... 이 문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뉴요커라더니, LA에서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한국말을 공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지난한 노력의 흔적은 고스란히 노트에 남아있었다. 진짜 오랜만에 이미죽은 듯한 말을 써보는 데, 공부에는 왕도가 없고 공부는 배신을 하지 않는다. 동서고금 진리다. 이 천사의 '도시'(Los Angeles)에는 정말 천사가 많았는지 멀더의 한국어 열의에 감복한 사람들이 준 한국어 책들도 여러 권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공부한 책과 공책을 다 들고 태평양을 다시 건너 왔다. 그리고는 내 앞에 펼쳐 놓았다. 그동안 이렇게 공부했노라고... 클래식(classic)이 별거인가. 이것이 바로 클래식이다. 가장 고전적인 공부 방법, 최고 수준의 모범이다.
이 공책이 너의 클래식이다. 설마 버리지는 않았겠지?
*양응수(楊應秀, 1700~1767, 숙종 26~영조 43년) 조선의 학자.
저서로『백수문집(白水文集)』30권 17 책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