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보러 가야 돼요." 다시 시작된 첫 수업이 끝난 후에, 멀더는 방을 보러 가 주었으면 했다. 멀더는 서울에서 약 2년 간 체류할 계획이라 방이 필요했다. 서울 생활 방식을 꿰고 있던 그는 역시나 이미 벼룩 신문 광고를 쭉 훑어보고 몇 군데를 골라서 해당 광고를 찢어서 들고 왔다. 당시 세상의 모든 거래 정보는 <벼룩 신문>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가보자고 했던 곳은 2호선 이대역 근처였는데 우리가 이용하는 출구의 반대편에서 가까웠다. 나는 거기가 아현동 어디쯤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달동네였다. 지하철역 출구가 사방으로 나있는 대로에서 조금 들어가면 달동네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멀더가 들고 온 주소의 집은 이미 비어 있었다. 대문과 방문이 따로 있었던가 없었던가. 방과 방이 아닌 공간이 두 개가 붙어 있었는데...작았다. 형광등을 켜도 어두웠고 옅은 꽃무늬 벽지는 빛이 바래서 얼룩져 보였다. 방과 다른 공간 사이를 어떻게든 오갈 수 있게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살겠다고?) 다음은? 두 번째 집은 첫 번째 집보다는 약간 더 넓다는 느낌을 주었으나 역시나 좁았다. (다리를 뻗을 수나 있을까...)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필수 동선이 오묘한 구조로 연결돼 있었다. 솔직히 나는 많이 당황했다. 물론 이 동네에도 마당이 있는 넓은 집도있다.그런 큰 집의 방한칸이라고 예상했을까? 멀더를 돌아보니 '괜찮아요' 했지만, 나는 다음 주에 더 찾아보자 하면서 나가자고 손짓했다.
다시 온 멀더를 겨우 3번 만났는데 나는 피로를 느꼈다. 달동네의 방이, 그 방안의 구조가 일주일 내내 눈앞에 아른거렸다. 박완서 님의 소설 『엄마의 말뚝』에 '집이라기보다는아무렇게나 쏟아놓은 상자갑 더미의 상태' , '사람들이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를 물어 들이기 위해 가까스로 내놓은 통로'라는 구절이 실감 나게 와닿았다. 내가 직업상 그 소설을 매년 몇 번씩 읽었으나, 아현동의 달동네 그 비어있는 방을 보자, 어떤 이들의 숨죽인 전투 같은 삶이 비로소 와 닿았다. 게다가 2년 전에_아무리 사생활이라 해도 23살의 청년이 타지에서 생활하는데_나는 한 번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맙소사. 멀더가 나더러 한국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은 이런 것을 궁금해 하지 않은 것도 포함돼 있었나 보다. 그렇다면 지금은 조금 개인 생활을 참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많아지고 판단은 서질 않아 초점을 잃어가는 나의 흐릿한 눈에 우리 탁자를 지나가는 톰(Tom)이 보였다. 한국 이름 승연이는 Tom을 탐이라고 발음했고 나는 톰이라고 불렀다. 영어 초보회화반에 참여하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수업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었다. 본인이 아는 영어 이름이 '톰과 앨리스'뿐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남자인 톰은 서울 유학생이었다. 고향은 군산인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집을 얻어 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정말 나도 머리 식히자고 물어본 말이었다.
“ 톰~ 너네 집에 혹시 빈 방 있어? ”
“... 네.”
“ 아! 그래?”
나는 톰에게 멀더를 소개하지도 않고 그저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 사람이 그 집에서 살아도 될까?”라고 물었다. 멀더가이 톰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때 톰의 시선이 어디에 가 있었던가... "... 네.... 뭐...”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나의 5초 부동산 중개로 멀더는 그 집에서 2년 동안 살게 되었다. 그날 우리 옆에 다가와서 운명처럼 만난 톰과 그 집은 멀더의 한국살이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