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의 집에 가본 멀더는 거기서 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에 나를 그 말뚝 안으로 초대했다. 집들이가 하우스 워밍(Housewarming)이라고 외국인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말인데, 어쩔 때는 영어가 말뜻이 명확하다. 그럼 멀더는 방들이인가. 내가 집에서 출발할 즈음, '연신내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아마 15분쯤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라고 문자가 이렇게 오고, 마을버스는 사람들이 '막 내리는 곳'에서 내리란다. 사람들이 막 내리는 곳? 종점? 어머나. 길거리에서 혼자 큭큭 웃었다. 모른 척하고 '대체 거기가 어디냐'라고 다시 물었더니...결국 영어로 답이 왔다. last stop(종점) 막은 알고 종점은 모른다니... 뭔가 단어가 뒤죽박죽으로 입력된 모양이다. 그나마 생활에서 막 쓰는 막(마구)의 개념이 생긴 것이 어딘가 하고 스스로 위로했다.
2월 중순. 추운 날이고 나는 학원 수업도 없는 날이라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은 약속이고, 더군다나 멀더가 나에게 만들어줄 음식재료를 구하러 한남동까지 일부러 간다고 했다. 마을버스 종점까지 올라가는 낮은 경사의 언덕길에는 빌라 주택들이 연달아 있었고, 길게 이어진 골목길에 작은 구멍가게, 가로등 달린 전봇대 등 동네가 친근한 분위기다. 톰의 집 바로 앞길이 경사가 꽤 있어서 '겨울에 얼면 썰매타도 되겠다' 했더니 눈이 많이 오면 마을버스가 오지 않아 걸어와야 한다고 한다. (아... 그렇습니까) 너는 이 모든 것을 즐기고 있구나!
톰의 집은 좋았다. 계단을 한 두 칸 내려가야 했지만 전체적으로 공간이 넓고 큰 방이 여러 개 있었다. 세탁실이 따로 있었고 주방 겸 거실은 둥근 탁자를 펴고 3명이 왔다 갔다 해도 서로 부딪히지 않아도 되었다. 여동생이 썼다던 멀더의 방을 보자마자 나는 '이 방이 멀더를 기다리고 있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몸을 대자로 뻗을 수 있는 킹사이즈 침대와 특히, 피아노가 있었다. 음대 작곡 전공인 그에게 이역만리 서울 서쪽 언덕 꼭대기 반지하 월세방에 피아노라니! 이보다 더 극적인 공간이 있으랴. 멀더도 나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겠지! 톰의 집을 보러 가서 5분이 채 안 돼 '여기서 살겠다'라고 했으니까. 돌아보니 멀더는 혼자 이것저것 만드느라 분주했다.
태생적으로 게으른 멀더가 아침부터 연신내에서 한남동까지 달려가서 사온 재료로 만든 요리는 둥글고 얇은 밀가루 부침에 여러 가지 속재료를 넣어서 말아먹는 것이었다. 내가 가자마자 둥근 '난'을 보고, 아 그리운... 인도 식당. 적도 근처 나라에 가 있을 때 많이 먹었다. 그날 멀더가 준비한 것은 '토르티야'라고 멕시코 요리라고 했지만 싱가포르에서 내가 처음 먹어본 것은 인도 요리 '난'이었다. 주문 즉시 반죽 한 국자를 달궈진 팬에 쓱 돌려서 올리면 달걀지단 부치듯 금세 난이 만들어진다. 익은 난을 한두 번 접어주면 더 말아서 노란 소스에 찍어 먹었다. 한 장 먹으면 그것이 점심이었다. 어제는 저 갖은 재료들에다 그리움까지 섞어서 석 장이나 먹었더니 '행복에 겨워서' 돌아오는 길에 졸음이 쏟아졌다.(...라는 그 특별한 날의 기록)
이게 너가 평소 먹는 미국 음식? 하니 미국 음식이라는 것은 없단다. 무슨 무슨 나라 음식이 있을뿐. 그야 그렇겠지. 이민자들의 나라니. 나의 5초 중개로 만난 톰과 멀더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사촌사이처럼 무잘 지냈다. 멀더가 붙임성이 있고 인정도 느끼고 주고 받는 성격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았다. 멀더가 나보다 한국 사람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집 안을 둘러보니 기타도 있었다. (와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1인 1 악기를 시키셨나.) 톰은 기타를 치다가 기절했을 정도로 마니아라던데... 연주해 준다고 하더니 끝까지 손만 풀었다. 음... 하긴, 우리 오빠도 그렇고 기타 들고 폼 잡는 남자들이 '알함브라의 궁전'이라고 치는 데... 대부분의 경우는 '알함브라의 마구간'이다. 멀더도 피아노 뚜껑을 열고 뭔가 소리를 들려주긴 했다. 본인이 작곡한 멜로디란다...맞다 음대 다니고 작곡 전공이라했는데 연주를 처음 들어본 소감은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