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지인들은 20대에, 조금 늦은 이들은 30대에 공부하러 가든 여행들 거의 뉴욕을 다녀왔다. 그럴 때마다 뉴욕 방향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도 한 번은 꼭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장소가 바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이다. 내가 뉴욕 현대 미술관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무려 1999년에 열린 이중섭의 전시회를 통해서이다. 당시로서는 대형 규모의 전시회가 많지 않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중섭의 그림 원작을 그 전시회에서 거의 다 봤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 은지화를 처음 보았고, '1955년에 뉴욕 모던 아트 뮤지움에 석 장의 은지화가 소개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단돈 6천 원에 구입한 전시 도록에 다음과 같은 작품 해설이 실렸다. 대구 미국 문화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직원 아서 맥타카트(arthur Mctaggart)가 1955년 이중섭 서울 전시회에서 은박지 스케치 3점을 구입하여 뉴욕 미술관 모마에 기증했다는 내용이다. 다음 해 1956년, 뉴욕 현대 미술관은 이중섭의 은지화 석 점을 공식 소장품으로 발표하였다. (이중섭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을 방문하려면 가족의 신상까지 다 털리는 온갖 서류를 갖추어야 할 뿐만 아니라, 대사관에 앞에 줄 서서 인터뷰를 대기하는 그 자체가 기분이 상했던 시절이다. 손바닥만 한 이중섭의 은지화는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정치적 경제저 우위를 점하고 있던 나라에 문화예술적 우위를 점했다는 자존심을 세워 준 작품이다.
이중섭, 신문을 보는 사람들( People Reading the Newspaper), 1950-52, 10x15, MoMA 소장품
은지화는 담뱃갑 안에 담배를 싼 은색종이 위에 뾰족한 도구로 긁는 방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이중섭의 은지화는 '낙원의 가족 (Family in Paradise)’ ‘(Fairyland)’ ‘신문 읽는 사람들(People Reading the Newspaper)’이다.
뉴욕은 다른 건 디스(?)할 수 있어도 미술관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날 때는 돈이 없고 시간적 넘쳐날 때는 경제걱 여유가 없다는 생활의 굴레. 여행을 염두에 두었을 때는 이 흔한 말이 진리처럼 수긍이 간다. 그래서 마침내라는 말은 이번 뉴욕행의 키워드다.
모마에 가니 서울 전시회에서 만나거나 이래저래 알려져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화가들의 익숙한 그림이 많이 있었다. '앙리 마티스'를 비롯하여 '샤갈'이나 '피카소' 같이, 20년 이내에 서울에 왔던 그림들이 거기 있었다. 앙리 마티스의 특히 내가 <연대>라고 기억하고 있었던 그림 <댄스>를 만나자 고등학교 동창 만나듯 반가웠다. 2005년에 앙리 마티스 서울 전시회에서 봤던 그림들이 있었다.
앙리 마티스, 댄스
멋진 분. 그림 안의 인물들처럼 두 팔을 벌리고 우아한 포즈를 취하셔서 염치 불고하고 사진에 담으려 했으나 찰나를 놓쳤다. 기억하고 싶은 모습이다. 무용을 하신 분 같았다. 뉴욕에 맨해튼에 미술관이 많지만 현대미술관에 오니 품위 있는 뉴요커를 만나는 듯하였다. 메트 박물관이나 휘트니 미술관에 비해 규모는 작으니 주말 마트처럼 사람이 많았던 두 박물관에 비해 가장 차분하게 천천히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MoMA 소장품
고흐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별이 빛나는 밤> 이 모마에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 이 그림 앞에 모여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어깨 틈 사이로 겨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원작으로 본 것은 처음이나 역시 뉴욕에 오자마자 고흐의 꽃 그림에서 받은 감상이 커서 의외로 덤덤하게(?) 보았다. 여전히 살아있는 색채의 아름다움은 말하자면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앙리 마티스, 바이올린 케이스가 있는 실내
앙리 마티스는 창문이나 베란다 풍경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특히 이 그림은 내가 머물렀던 방의 이미지와 가까워 눈길이 많이 갔다. 나의 경우는 바이올린 케이스 대신 옥색의 화병에 분홍빛의 꽃이 놓여있었다.
앤디 워홀, 캠벨 수프캔, 1962
앤디 워홀의 대표적 이미지 수프 깡통이다. 앤디 워홀의 작품 실물은 2000년 애 일본에 갔다가 우연히 처음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서울보다는 유명한 현대 미술이 일본으로 많이 갔다. 지금은 서울에서 먼저 열리거나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가 더 많으니, 불과 20년 사이에 한국의 문화 예술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뉴욕 1920년대 거리 행상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둘러본 공간이 있었다. 현대 미술 작품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뉴욕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사진과 영상이 상설 전시 중이다. 어깨 좌판을 들고 물건을 팔고 있는 미국인 뉴요거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지 않은가? 잘 들여다봐야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정확히 보인다. 지상 지하철을 건설할 당시, 맨해튼 텅 빈 거리의 흙길을 어지럽게 오가는 사람들을 담은 영상이 반복적으로 상영되었다. 나는 모르는 뉴요커들과 함께 뉴욕의 역사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뉴욕의 옛 모습이 신기한 표정이다.
미술관 창밖 풍경
잠시 중간층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맨해튼 길거리에 네모난 노점상이 많은데 유독 이 가게가 눈에 띄었다. 현대 미술관과 어울려 미술의 한 부분으로 느껴졌을까. 길 안쪽에 있는 모마 미술관 앞의 거리는 좁았다. 뒷골목은 더욱 좁았다. 날이 맑아서 하늘은 파랗다. 그런데 높디높은 빌딩이 하늘을 가려놓아서 빌딩 숲에 들어오면 흐린 날씨 같다. 대낮인데 불을 켜 놓아서 내 눈에 띄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