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 아트 갤러리

-에일대학교라는 동네

by 모든 한국학

무려 2백만 점, 세상의 모든 박물이 다 있을 것 같은 뉴욕 맨해튼 5번가 메트로 폴리탄 뮤지움에서도 만날 수 없는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작품이다. 의외였다. 뉴욕에는 최소한 유명한 현대 예술은 다 있을 것 같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에드워드 호퍼와 인연이 깊은 휘트니 미술관에 갔었지만, 휘트니에 상설 전시된 호퍼의 그림은 서울 전시회에서 본 그림이었다. 호퍼가 짙은 도시적 감성으로 대도시 뉴욕의 깊은 외로움을 그려낸 그림이 뉴욕에 없었다. 사정은 모르겠으나 호퍼는 생전에 도시와 도시를 많이도 여행하더니, 사후 그의 그림도 이 도시 저 도시를 여전히 여행하고 있나 보다. 그중 몇 점이 예일 대학교 미술관에 있었다.


예일대학교는 뉴헤이븐에 있는데 맨해튼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뉴헤이븐행 기차를 타러 맨해튼 북쪽 카브리니에서 버스를 타고 125 할렘역으로 갔다. 뉴욕 와서 한 일주일 정도 지하철만 이용하다가 기차를 타게 되어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125 할렘 기차역은 지상 지하철처럼 플랫폼이 높아서 주변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주황색 낡은 주택들이 붙어있는 담벼락은 크고 작은 낙서로 가득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글자는 재즈(JAZZ)였고, 재즈 감성의 낙서들로 뒤덮여 있었다. 음... 재즈와 뉴욕 할렘은 떨레야 뗼수 없는 단어 아닌가. (나도 한 때는 재즈를 들었다.) 담벼락의 재지(Jazzy)한 낙서를 찍을까 말까 고민할 때, 멀더는 점심 먹을 곳을 검색하고 있었다. 멀더는 예일대학원을 다녔는데, '에드 워드 호퍼 그림이 예일대에 있더라' 하니 '가보자' 하고 오랜만에 뉴헤이븐을 방문하게 되었다. 멀더는 대학원 진학 공부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언덕배기에 있는 도서관에서 했다. 그 사실이 떠올라 혼자 웃음이 나왔다. 그때의 나와, 멀더, 서울 옛 주택 골목의 풍경과 지금 서있는 할렘역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또 비슷한 풍경이 오버랩된다. 뉴욕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들이 계속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125 할렘 기차역, 맨해튼


기차는 좋았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알랭 드 보통말'을 빌리자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어 술술 진행되어 간다.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특히 그렇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역시 여행은 기차를 타야 어딜 가는 기분이 난다. 사라지고 나타나는 풍경을 보며 낡은 생각은 없어지고 새로운 생각이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게다가 뉴욕에 도착해서 내내 지하철만 타고 다니면서 본의 아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기차는 정말 멀쩡했다.



인터넷으로 예매한 기차표를 다시 작은 마문지 종이 티켓으로 굳이 출력하여 구멍을 낸다. 예전에 우리도 사용했던 종이 기차표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봤다. 이미 한국에서 사라진 기차표를 미국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 나의 머릿속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국가의 크기와 이미지가 다시 섞인다. 기차역 기계에서 뽑은 종이 티켓에 구멍을 받고(?) 좌석등받이 위에 꽂아두었다가 역무원이 와서 달라고 하면 준다. 옛날 방식이 그리운 사람들은 미국에서 기차를 타면 되겠다. 내 기억에는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나갈 때 바구니에 던진 것 같다. 미국에는 아직도 이런저런 아날로그적 생활 방식이 곳곳에 남아있다. 종이 티켓을 기념으로 달라고 할 수가 없어서 사진이나 남겼다. 맨해튼 빌딩 숲을 벗어나니 정겹다.



뉴헤이븐의 유니언 역은 일요일이라 매우 한산했다. 유니언 역에서 10분 정도 더 들어가는 예일대는 학교 정문이 있거나 하지 않고 교정의 경계가 따로 없다. 한 마을, 동네 전체가 학교 캠퍼스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예일대학교가 1700년대 목회자 양성을 위해 생긴 교육기관이다 보니 교회 건물이 많았다. 거리 이름부터가 종교적이다.( Church st. Chapel Street. ) 2 백 년쯤 된 옛 교회가 한 마을 곳곳에 세워진 셈인데, 교회건물들이 크기와 분위기에서 개척자 느낌을 준다. 예일대가 아름다운 옛 건물이 많다는 소문으로 나는 셀카봉까지 들고 갔지만 막상 돌아다니면서는 꺼내지도 않았다. 어쩌면 꺼낼 수가 없었다. 깊고 견고하며 고독마저 느껴지는 옛 도시의 건축물 앞에 만 원짜리 셀가봉은 너무나 가벼운 느낌이었다.


도서관 입구,

예일 아트 갤러리


동네 전체가 학교 교정이다 보니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건너간다. 횡당보도라고는 하지만 성인발걸음에 몇 번이면 건너갈 폭이었다. 마치 초등학교 앞 건널목을 건너가는 듯하였지만 옛 길의 흔적 아닌가. 아트 갤러리는 의외로 현대식 건물이어서 유명한 사람이 디자인했다는데 별 감흥은 없었다. 이미 맨해튼에서 빌딩 너무 많이 봐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학교 미술관이라고는 하지만 그 규모가 뉴욕 현대 미술관에 비등할 만한다. 모마(MoMA)에 없는 작품도 많이 있었다. 1층부터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아서 두리번거리기만 해도 유명한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서울전시회에서 볼까 말까 한 작품들이 무심히 걸려있었다. 15시간 비행기 타고 온 보람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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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도 찍어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들끓고 있을 때, 동행한 사람 중의 한 명이 나더러 '여기'라고 손짓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모아 놓은 공간은 따로 있었다. 호퍼의 그림이야 말로 가장 강렬하게 뉴욕 같은 대도시를 연상시킨다. 소재가 그렇다. 한데 예일대학교는 대도시는 아니고 한적한 시골동네다.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갑자기 예술가라도 된 듯이. 호퍼는 처음 보면 잊을 수가 없을 정도의 빛을 화폭에 담기도 하였다. 내가 처음 에드워드 호퍼를 알게 된 그림도 이 갤러리에 있었다. 바다에 면한 집. 화폭의 2/3가 빛을 그린 그림다. 호퍼의 그림들은 그림 안에서 혹은 밖에서 다양한 각도의 빛을 받으며 '마침내 여기까지 오셨군' 하는 듯하다.


Roomby the sea 1951
Sunlight in a cafeteria 1958




인생도 여행도 항상 뜻하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호퍼의 그림을 보러 갔으나 더 인상적인 예술가를 만났다. 예일 아트 갤러리 특별 전시회가 있었다. 뭉크(Edvard Munch, 1863~1944) 흔히 알고 있는 <절규> 이전의 뭉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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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작가도 있었다.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Ernest Ludwig Kirchner 1880~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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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백년전에 이렇게 감각적인 색감을 썼다니, 21세기 지금 며칠전에 작업을 끝낸 듯 하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7%90%EB%A5%B8%EC%8A%A4%ED%8A%B8_%EB%A3%A8%ED%8A%B8%EB%B9%84%ED%9E%88_%ED%82%A4%EB%A5%B4%ED%9E%88%EB%84%88






뉴헤이븐 대학교라고도 불리기도 했던 예일대학교 앞에서도 서점에 들렀다. 1975년부터 있었다고 하는 액티쿠스 서점이자 북카페다. (Atticus bookstore cafe). 책과 문구가 있고 카페를 겸한다. 대학교 앞이라서 그런지 역사나 사상 등 무게감 있는 책들이 전면에 보인다. 작년에 한국에서 영화로 개봉하기도 했던 <플라워 킬링 문>의 원작이 보인다. (Killer of the Flower Moon) 북 아메리카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를 북 아메리카에서 보니 현실감이 더 든다고나 할까. 한국에서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현장에서만 가질 수 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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