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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Oct 23. 2024

앨리스 아일랜드

자유의 상이 보이는 이민자 박물관

 미국은 국가라기보다는 세계                                                   


   창밖을 보니 날이 흐렸다. 맑은 날에는 하늘이 완전히 파란색이며 안개가 자욱한 흐린 날에는 강의 모습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자유의 여신은 바다에 떠 있는데 배는 강으로 나갈 수 있을까 물 위에서 자유상은 보일까 안전은 괜찮을까 싶었다. 사실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나의 경우는 이민자 박물관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자유의 여신상 옆에 있네? 했다. 멀더가 사는 동네만 돌아다녀도 나에게는 모든 것이 이국의 것이니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뉴욕에 사는 현지인 멀더도 그쪽으로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니 뉴욕에 사는 데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간 적이 없다고? 부부사이에도 그것을 물어본 적이 없는지 나로 인해 부부는 서로 자유의 여신상 앞 가봤는지 안 가봤는 처음 알았다. 홍은 당연히 가봤단다. 아마도 홍은 학창 시절을 뉴욕에서 보내고 멀더는 LA에서 다녀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이들의 대화는 마치 자연원이 에버랜드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이제야 확인하는 느낌이랄까.


   맨해튼 윗동네에서 빨간색 1호선을 타고 기다란 맨해튼을 세로로 질러 내려가 사우스 페리역에 내린다. 공원의 이름이 배터리란다. 아무튼 배터리 공원을 다시 가로질러 걸어가면 리버티 섬을 들려 앨리스 섬으로 가는 루즈가 정박해 있다. 앱으로 예매를 했으나 기차에서처럼 종이 티켓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밀려와 물어볼 사이도 없이 배에 올라야 했다. 맨해튼 중심부나 지하철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서양(?) 관광객 일행이 다 거기 있었다. 공원 안에 유독 모자를 많이 팔고 있었는데 페리에 타고 보니 역시나 바닷바람 때문에 모자가 필요할 듯하다. 자유의 여신상 근처에 안 가봤다는 뉴요커 멀더를 데리고 작은 페리 배에 올랐다.


앨리스섬에서 보이는 맨해튼 스카이 라인.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리버티 아일랜(Liberty Island)는 지나가고


    자유의 섬, 자유의 여신상이 모셔진(?) 섬. 뉴욕항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 자유의 상을 놓았다. 맨해튼의 마천루 때문에 내륙 도시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뉴욕은 항구 도시다. 항구라는 지리적 이점이 맨해튼을 급성장시키고 성장의 성장의 거듭하여 세계 최대의 도시 스카이 라인을 만들었다. 뉴욕항의 앞바다는 바다의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오징어배가 정박해 있는 항구와는 전혀 다른 대양의 기운이 있다고나 할까. 날이 흐린 듯 맑은 듯 어중간했다. 바다는 하늘색을 닮는 법인데 하늘이 맑으면 바다도 맑고 하늘이 흐리면 바다 회색빛이다.  수시로 변하는 바다색 상관없이 민트색의 자유의 여신상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거대하게 느껴진다. 저 추레해 보이는 조각상의 옷이 민트색이 된 이유가 리버티섬에 있었을 법하다. 나와 함께 크루즈를  탄 사람들은 유럽 여행객들이었다. 아마 거의 폴란드말이었나. 페리가 곡선으로 휘어지면서 자유의 여신상을 끼고도는 데 자유상이 눈앞에 두둥 나타나자마자 일제히 일어선다. 배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경고는 아무 의미가 없는 안내판.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다 난간에 서서 사진 찍기 바쁘다. 1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상이 바다에 떠있다. 가까이서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난다.

페리위에서 바라본 맨해튼


앨리스 아일랜드 (Ellis Island)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멀고 먼바다를 힘겹게 건너 미국땅을 밟은 이민자들은 자유의 상이 보이는 앨리스 섬에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앨리스 섬의 모든 공간은 실제 이민자들의 입국 대기와 심사가 진행된 장소이니, 관광들이 발디디고 있는 섬 전체가 과거 이민자들의 흔적이다. 오디오 가이드는 한국어도 있으니 받아서 목에 걸고, 요즘은 번역 앱이 발달하여 바로 이미지 번역을 참고할 수도 있다. 나는 많은 전시들 중에 이민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전시실에 특히 집중했다.

이민자들의 분포를 표시해 둔 지도
바다를 건너온 초기 이민 사진
인프라 건설의 주역들과 그들의 거주지.


            미국인프라, 도로, 철도, 다리를 만든 사람들은 아일랜드인과 중국인이다.


 


   나를 이민자 박물관까지 이끈 한복을 입은 한 장의 사진. 개인적으로는 자유의 여신상보다 그 사진을 찾아보는 일이 더 중요했는데. 사진 외에 별 다른 상세 설명은 없어서 많이 안타까웠다. 아시아라는 경계로 묶인 초기 아메리카 땅을 밟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의 모습도 두루 안타까웠다. 1900년대 초 사진 한 장으로 만나서 결혼한 부부들이 있었다. 하와이에 사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결혼을 위해 신부의 사진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고 비용일체를 부담하고 데려갔다. 그 사진 신부 (picture bride)의 이야기를 이민자 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신대륙 아메리카 땅에 들어온 아일랜드 여성, 중국인 여성, 일본인 여성들의 처지는 식민지 조선여성들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일까.  어디든 도서관으로 달려가 기록을 확인하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이민의 역사를 담은 기록 영화가 상영 중이어서, 역시 이민자의 후손 멀더는 당연히 봐야 했다. 나는 오늘 다 보지 못할 남은 전시관과 생각할 것이 넘쳐서 잠시 2층 의자에 앉아 있었다. 1800년대 이민자들의 처참한 모습을 목격한 듯한 기분과는 겹쳐지지 않는 바로 그 당시에 지어진 건물이다. 둥근 천장에 유난히 멋있어 보이는 샹들리에다. 앨리스 섬에 내려 입국 심사를 받는 곳이 바로 이 장소라고. <뉴요커>의 기사에 따르면, 청동 샹들리에와 이탈리아 장인이 29,000개의 타일을 한 장씩  둥근 천장이 있는 등록사무소라"는, "1800년대 중순 뉴욕에서 가장 으리으리한 장소였다."란다... 한복 입은 여성의 가족은 지금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을까 아주 매우 몹시 궁금하다.




    

  https://www.statueofliberty.org/ellis-island/national-immigration-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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