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아침은 시간을 의미하면서 식사의 뜻으로도 쓰인다. 영어로 아침은 모닝(morning)이고 아침 식사는 블랙퍼스트(Breakfast)다. 어렸을 때<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 제목을 처음 듣고는, '티파니라는 장소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그런 의미로 나는 생각했다. 티파니는 작은 섬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는데, 보석 상점 이름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 제목을 '티파니에서 아침 식사를' 이렇게 해도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하늘과 땅차이의 뉘앙스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말 아침이 시간과 식사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니 천만다행이다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노란 택시에서 내린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 상점의 진열장 보석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다. 빵을 한입베어 물고 커피를 마신다. 와우! 영화는 라스트 씬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인데 유독 이 영화는 첫 장면이 다했다.
티파니 근처에서 베이글을
비 오는 수요일이자 뉴욕에서 마지막 날, 나는 맨해튼 5번가 근처에서 스탠딩 베이글을 먹어봤다. 점심시간이고 작은 가게다 보니 앉을자리가 없어서 나도 오드리처럼 서서 먹었다. 뉴욕 베이글이라고 평소 동네 빵집에서 사 먹는 베이글과 큰 차이는 못 느꼈다. 다만 베이글에 발라먹는 크림치즈 종류가 엄청 많았다.그게 특별하다면 특별한 것이다. 베이글 빵의 종류도 많기는 했다. 어쩐지 어수선하여 무지개색 베이글을 사 와서 맛본다는 것을 잊고 아쉬웠는데, 나중에 서울에서 무지개색 뉴욕베이글을 보고 진심 크게 웃었다.
반즈 앤 노블 서점 직원
맨해튼 5번가의 '반즈 앤 노블 서점'에 들렀다. 처음에는 그 거리가 5번 가인줄 모르고 걸었다. 전날에 모마(MoMA)에 갔다가 큰길로 나와서 지나가다 알았다. 길이 다른 곳보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느낌이랄까. 그제야 돌아보니 5번가에 명품 매장이 몰려있었다. <반즈 앤 노블 서점>은 빌딩을 받치고 있는 흰 기둥에 가려 건너편에서 겨우 보였다. 내가 뉴욕에서 두 번 가 본 서점이자 마지막 서점이 되었다. 서점에뉴욕방문 기념품도 있었는데 나는 머그컵을 몇 개 샀다. 컵을 넣어갈 데가 없어서재활용 가방도 한 개 들고 계산대로 갔다. 직원이 나에게 '반즈 앤 노블회원'이냐고 물었다.
뉴욕에서 일곱 군데 서점을 들렸는데 회원가입을 권유한 직원은이 사람이 처음이었다. '아니'라고 하니 가입을 도와주겠단다...(아... 뭐... 어쩐다...) 몇 초 망설였다. "이메일 주소는요?'하고 물어서, 나는 1초 정도 망설이다 "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직원은 바로 알아듣고 '아 방문(visit) 마지막 날이에요?' 하며 웃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동작을 멈추고 내가 들고 간 재활용 에코백을 보고는 더 작은 것이 있단다. 내가 고른 것은 1달러, 작은 것은 0.7달러였다. 어떤 것을 원하냐고 내게 물어서 나는 2개를 다 사겠다고 했다. "여행(visit)마지막날이니까요"이러면서. 직원의 얼굴이 정말 밝아졌다. 회원가입은 못 시켰으나 재활용 에코백을 2개나 팔아서 완전히 신난 모양이었다.
<이 처럼 사소한 것들>이 베스트 셀러에 있다
성 패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도시 빌딩숲, 맨해튼 5번가 마천루 사이에 견고하게 서있는 성 패트릭 대성당에 들어갔다. 관광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았으나 모두 조용한 걸음이다. 성당 안에는 성인사제들의 조각상과 재단들이 많았고 조각상을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1800년대 아름다운 건축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역시나 가방검사를 당해야 했다. 거룩해지기는 쉽지 않다. 성 패트릭 성당이 완공된 1878년에는 맨해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맨해튼을 걷다 보면 19세기 교회나 성당 건물이 눈에 많이 띈다. 현대 도시의 풍경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맨해튼이지만 종교적 건축물에 초점을 맞춘다면 또 다른 의미의 풍경으로 남을 것 같다.성당 한쪽 재단에 기부초를 붙이고 잠시 앉아서 참으로 오래 걸려 방문한 뉴욕 여행을 마무리했다.
"나는 이곳에 와서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없고, 아주 낯선 것을 발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기존 관념이 여기서는 명확해지고 생생하고 유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_괴테, <이탈리아 기행> 1786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