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광석 노래에 부쳐

by 모든 한국학

"좋은 노래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김광석 (1964~1996)




루이스를 처음 만났던 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주제는 바로 김광석의 노래다. 서울에 있는 동안 루이스는 김광석 노래를 '끼고' 살았다. 김광석의 노래를 매일 24시간 듣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그럴 수가 있나 싶었다. 흔한 농담으로, 김광석의 노래가 루이스에게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 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가 노래방에 가는 이유는 오로지 김광석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다. 루이스를 따라 무심코 노래방에 갔다가 김광석 노래의 거의 전 편을 들어야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서울에서 루이스를 알고 지냈던 모든 이의 즐거움이자 고충이었다. 특히 루이스는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자주 흥얼거렸다. 가사가 쉽고 멜로디는 흥겨웠으니까.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를 처음 들으면, 정말 가사의 신박함에 웃음이 나오면서 '잉어가 한숨 쉰다'에서 무릎을 칠 정도지만, 외국인이 들었을 때도 과연 그럴까. 이 가사의 역설이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 걸까. 단어는 쉽지만 평범하게 나열돼 있지는 않는데... 혹여 이 문장이 맞는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이런 잡다한 생각이 끊이지 않아서, 김광석의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가사를 같이 이해하고, 노래에 얽힌 이야기까지 해보는 한국어 수업을 준비했었다. 내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미국 팝송 가사로 영어 공부하는 방식인 셈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때 내가 준비하던 그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눠 보지는 못했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동, 서양 돛단배 이미지 차이가 큼)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아리송하다. 형용사: 모호하다, 불분명하다 / 알쏭달쏭하다.)
오늘도 애드벌룬 떠있건만 (애브벌룬은 홍보용으로 씌었다)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포수는 사냥꾼인데 호수에 사는 잉어를 잡는다는 역설)


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1970년대는 남자들의 장발 단속이 있었다. 남녀의 전형)
가방 없이 학교 가는 아이, 비 오는 날 신문 파는 애 (사회문제)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긴 숨을 내쉰다.

(강태공은 낚시꾼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인물인데, 사실 그는 중국 제나라의 초대 군주였다.)


한 여름에 털장갑 장수, 한 겨울에 수영복 장수
번개소리에 기절하는 남자, 천둥소리에 하품하는 여자 (남녀를 그저 이분법으로만 이해했던 사회 분위기)

독사에게 잡혀온 땅군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땅군은 뱀을 잡는 사람이며, 독사는 독을 품고 있는 뱀)




60년대 청춘의 방향과 이별, 70년대 사회적 풍자, 90년대 담담하게 읊은 부조리


나의 경우는 노래가 좋으면 그냥 들었지 그 노래의 가사나 얽힌 이야기를 파고들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서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노래가 번안곡이며 원곡자 밥 딜런(Bob Dylan)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당황했다.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곡이다. (직역하자면, 두 번 생각하지 마 괜찮아.) 원곡의 가사는 남자가 여자를 떠나면서 하는 말이다. 내가 현실에서 아리송해진 순간이다. 보통 외국 곡을 번안(번역)하는 경우는 원곡의 분위기를 비숫하게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곡과 번안곡이 완전히 다른 노래다. 밥 딜런의 노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연애사의 한순간을 담은 듯한데, 물론 1960년대의 기존 질서에 대한 작별과 저항의 의미를 담았다고 해석한다면, 음악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그래요? 그렇군요? 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밥 딜런의 시대도 알아야 설명이 되겠다. 복잡해진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나쁜 남자의 개인적 연애사의 변명 같은 노래에 완전히 다른 차원의 내용을 담은 이는 고 양병집(1951~2021) 선생이다. 나는 그를 포크가수가 아닌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와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가 달리는 세상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된 세상이다. '물속으로 가는 비행기'나 '하늘을 나는 돛단배'는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양병집 선생은 자신이 활동하던 1970년대를 '사냥꾼이 엄한 잉어나 잡고, 낚시꾼이 육지에서 참새를 죽이고 있으며, 잡으려는 뱀에게 되려 잡아 먹히는 땅군'의 시대라 읽었다. 선생의 시대 인식을 높이 사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진단하고 그 시대에 필요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전통적인 풍자의 방식_일종의 해학으로 말이다. (결국 양병집선생의 앨범은 금지곡이 되었다.) 여기에 90년대의 아이콘 김광석이 <역>이었던 제목 대신 가사의 첫 줄을 내세워 주목을 끌고 특유의 음색으로 다시 불러, 마침내 노래는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가장 호소력 있게 들렸다고나 할까. 부조리는 사라지지 않고 그림자처럼 우리 곁을 따라다니니 돛단배를 타고 하늘로 솟아올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 그런 노래였다.


김광석 노래가 좋은 이유?


한국어와 한국 문화는 물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졌던 (지금도 여전한) 루이스는 김광석 노래 가사를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당시 인터넷 카페에 게시하였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필두로 '사랑했지만', '기다려줘',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사랑이라는 이유로' 등을 이미 한 줄 한 줄 번역해서 의미를 파악하고 있었다. 굳이 내가 힘주어 얘기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루이스는 김광석의 음색, 노래 가사, 김광석의 삶 이 모두가 다 좋았단다. 쓸쓸해서 좋았단다. 그때 26살인가 그랬던 루이스는 뭐가 그다지도 쓸쓸했을까. 내가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음색은 애수(哀愁, Sorrow)다. 그 애수가 담긴 음색이 부르는 쾌활한 노래가 특히 좋았다고 한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가 그런 경우다. 유학 생활하는 루이스에게 매일매일 일어나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던 노래다. 김광석의 노래는 '스산했던 시대'를 건너는 힘이자 우리 젊은 날이었다.






당시 노래방에서는 본인들이 부른 노래를 녹음해 갈 수 있었다. 루이스는 자신이 부른 김광석 노래를 녹음한 것이라고 카세트테이프를 주곤 했는데, 나는 단 한 번도 그것을 따로 들어본 적은 없다. 한 번도 들어 본 적은 없었으나 아직도 가지고는 있다. 어쩐지 버리지 못한 채로. 자신이 20대에 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불렀던 노래 녹음테이프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했더니, 루이스의 첫마디는 '아이고'였다.



Gemini_Generated_Image_복사본2.png 하늘을 나는 돛단배 상상 이미지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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