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뚝뚝함에 대하여
소소하지만 큰 장벽
루이스는 서울에 사는 동안 외국어 대학교 앞에서 하숙을 했다. 하숙집 주인 할머니께서 식사를 준비해 주셨는데, 루이스가 전하는 할머니의 억양이나 말투를 들어보니 평안도 지방이 사투리 같았다. 말은 그냥 서울 말인데 말투가 딱딱하고 서울말과 다른 억양이라 잘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아침 식사는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에 하숙생들이 직접 달걀 프라이를 해서 먹는 방식이란다. 그런데 루이스는 처음에 아침 달걀을 본인이 직접 하는 시스템을 몰라서, 할머니가 차려 놓은 밥상 그대로 먹었다고 한다. 하숙집 할머니는 루이스에게 따로 매식의 방법을 알려주시지는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쩔 때는 할머니가 자신이 외국인인 것을 모르시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루이스가 머리색이 한국 남자처럼 검고, 한국말을 잘하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실 수도 있겠다.
하숙집 생활이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갈 무렵, 그날 아침에도 루이스는 차려져 있는 밥을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다가오셔서 ‘왜 달걀 안 먹어?’라고 물어보셨다. 루이스 아침 밥상에 달걀 프라이가 없는 것을 보고 물어보신 것인데, 루이스는 ‘.. 네..’라고 했단다. 루이스는 왜를 듣지 못했고, 석연찮은(?) 루이스의 대답에 할머니께서 루이스에게 ‘달걀 프라이 안 먹어?’라고 다시 물어보셨다. 루이스는 또 ‘... 네...’라고 답하였다. 왜 자꾸 달걀 얘기를 하시는 건지 루이스는 이유를 전혀 몰랐고, 당신이 물어보시는데 알아듣지 못하고 '네네' 거리는 루이스를 빤히 쳐다보시던 할머니는 결국 “너 달걀 몰라?” 하고 소리치셨단다. 큭큭큭이다. '루이스가 외국 사람인 줄 알고 계셨네.'
장작이 반으로 쩍 갈라지는 듯한 할머니의 큰 소리에 깜짝 놀란 루이스는 마침내 ‘아니요’라고 일단 대답을 했다. 비로소 루이스의 의사를 확인하신 할머니께서 ‘그럼 달걀 프라이 먹어!’라고 카리스마 넘치게 말씀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고. 그때까지도 영문을 몰랐던 루이스는 허둥지둥 부엌으로 갔다. 할머니 카리스마에 눌러 일단 부엌으로 갔는데, 먹으라는 달걀 프라이는 안 보이고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서성거렸다. 방으로 들어가셨던 할머니는 부엌에서 '치~익'하는 달걀 부치는 소리가 안 들리니까, 다시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이 소리치셨다. ‘너 달걀 프라이 할 줄 몰라?.’ 나는 웃음이 나와서 손으로 주먹을 쥐고 입을 막았다.
결국 할머니께서 부엌에 나오셔서 알아들을 수 없는 잔소리를 쏘아 대며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루이스의 아침 밥상에 올려 주셨다는 이야기다. 할머니께서는 루이스가 남태평양을 건너왔든 빙하시대에서 왔든 관심 없고 외국 사람으로 타향에 와있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계셨고, 오로지 아침밥에 달걀 프라이를 먹이는 것만이 중요하셨던 것 같다.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개를 가진 돈 키호테의 후예 루이스는 이른바 멘붕에 빠져, 달걀 프라이를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기억에 없다. 루이스는 아침에 달걀 프라이를 안 먹었다는 이유로 거칠고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후려 맞은 기분이었을 테지만, 원래 빠르고 딱딱하게 들리는 스페인어 억양에 한국말 평안도 사투리가 절묘하게 어울려 이야기를 듣는 나는 웃겨서 쓰러질 지경이었다.
루이스는 할머니와 달걀 프라이 사건을 서울 생활 6개월이 지난 시점에 나에게 해 주었는데, 그날 부엌에서 서성대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고 했다. 사실 루이스는 가스를 사용할 줄 몰라서 헤매고 있었다고. 내가 가스레인지가 스페인 하고 다르냐고 물었더니, 할머니 하숙집 부엌 가스레인지는 사용할 때마다 가스총으로 불을 붙여야 했다고. 아이고 난관에 난관을 봉착했구나.
무뚝뚝함 설명서
루이스가 한국에서 처음 맞닥뜨린 관문이 하숙집 아침상의 달걀 프라이였다니. 동시에 그 달걀 프라이는 무뚝뚝한 할머니의 친절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다. 루이스의 이야기는 자신의 한국 생활에서 잊지 못할 가장 코믹한 에피소드로 남았고 나에게는 놀라운 문화적 경험으로 다가왔다. 루이스는 이 딱딱함 속에 들어있는, 달걀 프라이처럼 부드럽고 따듯한 할머니의 마음을 빠른 시간 안에 눈치챘다. 말은 직선적이며 명령으로 들릴 수도 있었으나, 그 마음속에는 타지에 나와 있는 청년이 잘 챙겨 먹지 않고 있으니 부화가 났을 할머니다. 겉과 속이 많이 다른 의사 전달 방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뚝뚝하지만 또 당연한 친절이 외국인들에게 낯선 방식이라는 점이 선명하게 다가 온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