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도 돌아갈 줄 모르더니

여정의 끝은 창대하였다.

by 모든 한국학

"인간은 가문이나 혈통의 자식이 아니라, 자기 행위의 자식이다" - <모범소설>, 세르반데스




대학교 졸업 무렵 교정에서 한국 문화 홍보 게시물을 발견하고, 홍보물을 게시한 사람을 찾아갔다는 루이스. 아마도 그때가 한국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본격적으로 서울 살이를 시작한 때가 2003년~2004년이다. 한국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나와 함께한 한국어 수업이 6개월 정도 되었고, 나는 특별히 6개월을 기념하는 작은 파티를 준비했다.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아서 송별회를 겸한 셈이었는데, 루이스는 마드리드로 돌아갈 줄을 몰랐다.

루이스는 귀국 날짜를 두 달 더 연장하고, 서울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을 보고 가겠다더니, 정작 나와의 한국어 수업에는 드문 드문 나타났다. 어디를 갔다거나 누군가를 만났다는 이메일만 계속 보냈다. 체류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나의 강박이었지, 루이스는 아주 즐겁게 지내는 듯했다. 마침내 날짜 연장 불가로 스페인으로 돌아간 루이스, 본인도 이 여정의 끝이 어디에 닿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용기를 내는 자에게 행운은 따른다." (La suerte acompaña a los audaces.)


이후 루이스는 자꾸만 서울에 나타났다. 스스로를 '돈 키호테' 라고 칭한 이달고가 1차 모험을 끝내고 다시 정비를 하여 2차 모험을 떠나고 이런 식이었다. 갑자기 서울에 나타났다 돌아가고 또 오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날 한국문학번역원의 학생이 되어 다시 서울에 체류하였다. 2010년 9월부터 루이스는 한국문학번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번역원 학생으로 더 깊이 한국어와 한국을 공부하였다. 서울에 나타날 때마다 조금씩 리즈 시절의 모습과 멀어지기는 하였으나, 루이스의 한국 출정은 그때마다 한국과 특히 한국 문학과 깊이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단순히 '한국이 좋아서'를 넘어 루이스는 마침내 한국 문학의 외연 확장자, 한국문학번역가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로이수_003_iuhionsuk.jpg 루이스가 보내온 춘향전 스페인어 판의 번역자는 본인 !


기묘한 역전


나는 학부 전공은 국어국문학인데 한국문화전공으로 마흔이 넘어 대학원에 진학해서 만학에 머리 쥐어뜯고 있던 시기다. 루이스는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를 스페인어로 번역했다고 알려왔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정말 좋았으나, 나는 박민규식 B급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의 소설에서는 크게 재미를 못 느꼈는데, 어쩌면 루이스는 나보다 더 잘 이해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딱 들었다. 한국 사회를 편견 없이 종횡무진 들여다보았으니까. 게다가 루이스가 번역을 했다고 해서 나는 박민규의 단편집 <카스테라>를 읽어 볼 정도였으니, 상황이 역전된 느낌이다. 이 소설의 소위 '병맛'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사람이 루이스가 되리라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한국 문학 전형에서 벗어난 박민규의 언어를 번역하려면 한국 사회를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루이스는 언어와 문화와 역사의 계통 차이를 넘어서고 있었다.


화면 캡처 2025-10-20 1019283.jpg 번역자, 루이스 알프레도 데 로스 프레일레스 알바로 , 구글 책 소개



어느 날 페이스 북에 '황석영 선생님과 같이 찍은 사진'을 올라와서 깜짝 놀랐는 데, 루이스는 황석영작가의 <바리데기> <낯익은 세상>까지 번역을 마쳤다. 어느 해는 서울에 왔다고 친구들에게 단체 문자를 발송하고는 본인은 틀어박혀서 신경림 시인의 '농무'를 번역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나에게 '농무를 아시나요?'하고 물었는데, 내가 국문학과 나왔다고 입시학원강사였음을 다시 알려줬다. 더군다나 <농무(農舞)>야말로 내가 20대에 끼고 다닌 작품이며, 루이스가 번역한 초기 시집을 아직도 소장 중이다. <농무>라는 명작이 스페인어 문화권에 알려지는 것이 반갑기도 하고, 그 작품을 내가 아는 루이스가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나는 아직도 못 읽고 있는 정유정의 <종의 기원>, 오정희의 <불의 강> 같은 작품도 번역하였다. 한국 문학을 전공한 나보다 이제 루이스가 더 깊이 한국어를 알아가고 있었다. 언어를 그저 말로 대충 이해해서는 번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 하숙집에서 달걀 프라이 하나 부치는 일도 헤매던 루이스의 용기와 성장은 놀라운 일이었다.


서로가 신기한 풍경


루이스가 '누구의 무슨 작품을 아세요?'라는 질문을 가끔 던지는 이유는, 그가 보기에 내가 한국 문학에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년을 두고 얘기하자면, 나는 오히려 스페인어 문학에 더 관심이 가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중남미 문학이다. 그래서 루이스는 내가 보르헤스 (1899~1986, 아르헨티나) 소설을 읽는다는 점을 매우 신기해했다. (당시 민음사에서 보르헤스의 소설집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서로 신기해하는 루이스와 나였다. 언젠가 보르헤스의 대표작 <픽션들>과 <불한당들의 세계사>의 스페인어 책을 사다 주며, 내가 그 어려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한국어로도 어려운데 무슨 스페인어로 된 책을 주나요'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보르헤스 소설은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 2017년에 루이스 말로는 여덟 번째 한국 방문, 8차 출정이다. 그 해에 특별히 바예호(1892~1983, 페루)의 시집을 찾고 있었다. 한국어와 스페인어가 나란히 수록된 1998년 한국어 초판인데, 절판되어 중고책을 구입하려 하니 가격이 열 배 이상이란다. 두 가지 언어를 같이 보고 싶은 루이스에게는 필요한 책이었다. 루이스의 문자를 받고 내가 답했다. '그 바예호 시집 나도 있는데?'. 루이스가 찾고 있던 절판된 바예호의 시집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루이스는 바예호 시집을 읽은 내가 또 신기했는지 잠시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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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20년을 알고 지내지만 서로를 이해 못 하는 부분도 물론 있다. 그 이유는 약속 시간 때문이다. 한국 문화의 B급 정서를 이해하는, 그보다 시간 개념이 자유로운 스페인 사람 루이스는 약속 시간에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친해져도 이 부분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스페인 사람들은, 혹은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은 정시라는 개념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예전에, 코리안 타임(Korean Time)이라고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담은 단어가 있었다. 이제는 사어(죽은 언어)가 되었다. 한국전쟁직후에 나온 말인데, 약속시간에 늦는 경우를 두고 한 말이었다. 정각에 오지 않는다고 부정 평가의 꼬리를 붙인 1950년대 미국인들이 스페인 사람들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일 것이다. 코리안이 15분 20분 늦은 것은 애교 수준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1시간 2시간 후에도 약속 장소에 나타나고, 어떤 경우에는 자동으로 다음날이 되기도 한다. 내가 루이스로 인해 알게 된 부대찌개 멤버 중의 한 분은 루이스와 저녁 7시에 만나기로 하면, 밤 10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맙소사다.




"인간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그러나 뜨거운 가슴에 들뜨는 존재..." 바예호


KakaoTalk_20251025_164259411.jpg 루이스가 스페인어로 번역한 한국 문학, 본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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