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민속촌을 간다는 것

-나는 누구인가

by 모든 한국학

'식목일에 나무를 심으렵니까?'


루이스가 보내는 문자나 이메일의 한국말 오자는 때로는 시적이다. 내가 시인이 아니고서야 '-렵니까'를 넣은 문장을 떠올릴 수 없기에 더욱 신기하다. 관계 공무원이 아니고서야 식목일은 그저 달력의 빨간 날 일뿐이며, 주 5일 근무자에게 주중 휴일은 더할 꿀 같은 보너스다. 그해 식목일은 특별했다. 루이스와 민속촌을 함께 가보기로 한 것.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의 문화유산을 보고 역사유적지 혹은 민속촌 같은 곳을 방문해야 한다는 강박은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루이스는 한국 '민속촌'을 가볼 것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식목일 휴일에 결국 내가 동행을 해 주기로 했던 것이다.


일전에 자연사 박물관에서 루이스의 뜨거운 학구열에 한번 데인 나는, 루이스의 쏟아지는 질문을 나 혼자 막아내기(?)는 힘에 부칠 것이라 예상하고 나의 지인을 한 사람 대동했다. 사실 외국인의 한국의 어디를 방문해서 궁금한 것들은 깊이 있는 설명이 필요한 것들이 아니다. 그런 것은 해설을 읽어보면 되니까. 정작 이들이 알고 싶은 것은 예상외의 것이다. 얼마 전에 TV 방송에서 아주 적절한 예가 등장했다.

영화배우 스칼렛 조핸슨 (Scarlett Johansson)이 유퀴즈에 나와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앞에 놓인 접이식 탁자였다. 우리로서는 이 작은 탁자의 용도가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사용하던 물건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고, 설사 처음 봤더라고 '이런 게 있구나' 정도의 반응으로 끝날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경우는 이처럼 우리 일상의 자잘한 것들이 신기하고 궁금하다. 요즘은 '케데헌'에 나오는 명동 거리 안내판이 이국 방문자들의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

그날의 나의 지인, 친절한 현주 씨는 루이스가 무엇을 물어보든 내가 일일이 답하지 않아도 온 마음을 다해 열심히 답해줄 친구였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는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서 휴일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편안했다. 용인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루이스는 나보고 '같이 가주셔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기꺼이 고마워하세요.'


어쩔 수가 없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민속촌은 또 뜨거운 장소였다. 어쩔 수 없다. 외국인들에게는 경복궁이나 민속촌이나 궁금하고 신기한 것투성이다. 루이스의 질문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마치 폭격을 받는 듯,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뢰가 터지듯이 폭발했다. 그러나 나의 복안 _동행한 나의 지인이 매 순간순간 아주 친절하게 아주 천천히 아주 자세히 매우 잘 응대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현주 씨의 답에 간간이 보태어 주고, 봄날 나들이 나온 사람처럼 여유 있게 조상님들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방인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둘러보니 민속촌은 정말 유익하고 재미있는 곳이었다. 한국 민속촌.(Korean Folk Village) 여러 번 와보았는데 처음 와 본 느낌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KakaoTalk_20251019_145600323.jpg 필름 사진 소장본


마을 입구 돌탑에 소원을 적어서 끼워 넣은 작은 샤먼 의식, 섬세한 기술자셨던 우리 여성들이 물레로 삼을 삶는 모습, 초가집 외벽에 널어 말리던 겨울 양식, 맛있는 엿에 흥을 얻어 주시던 시장터의 엿장수. 이 정겨운 모습들이 내 유전자에 넣어둔 기억을 불러일으켜 온몸으로 다시금 순환시키는 그런 기운이랄까. 경복궁이나 창덕궁이나 종묘 같은 곳에서는 결코 느껴지지 않는 다정함이 거기 있었다. 오랜 세월의 어느 시공간에 이런 마을에서 하루의 생활이 바삐 돌아가는 모습이 연상되며, 이 속에 진짜 한국과 진짜 한국인이 있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내 유전자에 무엇이 있는지 새삼 느껴져 정다운 피가 순환하는 느낌이랄까. 무뚝뚝하지만 섬세하고 허술한 듯 치밀하며 무엇을 하든 직업정신이 투철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항상 생각하게 하는 표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내가 한국어를 쓴다는 것이 이런 문화를 가진 것을 의미한다면 매우 유쾌한 일이다. 얼쑤!


민속촌_00022.jpg 필름 카메라 소장 사진


산수유가 피어있는 봄날, 600여 년 전 어느 한 마을을 재현해 놓은 이 공간에서 나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특히, 주막이 그다렇게 편안한 것을 보니 나는 조선 시대에 주모로 즐거운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옛날에 이 마을에 살았으면 주모가 딱이었을 거야.' 국밥에 파전에 동동주가 한 잔 들어가니 무엇을 물어봐도 다 알려주마 라는 기분이 들키고 하였다. 작은 항아리에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나는 막걸리보다 동동주를 더 좋아한다. 갑자기 동동주는 막걸리와 어떻게 다른지로 이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 봉착했다. 동시에 그보다 십 년 전에 일본에서 만난 일본인 아저씨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그 아저씨의 기분


해외여행으로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숙소는 도쿄였는데 나는 지인의 일정에 동행하여 나고야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고야에서 50대 일본인 아저씨 한 분이 우리를 명치 문화원으로 안내하셨다. 그 문화원은 일본 특정 시기를 대표하는 문화와 특별히 쇼군 같은 유명인의 주택을 옮겨다 놓거나 재현해 놓았다. 덕분에 나는 일본 메이지 시대(1968~1912) 대표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8~1916)의 집필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우리와 함께 그분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가는 곳마다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하셨는데, 일본 에도시대의 술 주조하는 방식에 따라 방금 걸러진 사케를 작은 소주잔에 받아서 마시고는 아주 즐거운 표정을 지으셨다. 평소에 술을 드시지 않으시는데 그 술은 한 잔 마셔보고 싶으시다면서. 그러고는 서너 잔 더 받아 드셨고 나도 받아서 맛을 봤는데 술이 정말 맛있었다. 얼굴이 상기되어 마치 놀이 공원에 처음 나온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루이스와 또 지인과 함께 민속촌을 거닐면서 그때 아저씨의 기분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분도 자신과 자신의 문화 속에 흐르는 동질감을 그날 새삼 느꼈기 때문 아니었을까.


언어 교환보다는 문화 교환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의 문화유산을 직접 보면 지식으로 머물러 있던 생각들이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이 있다. 반면에 내 나라의 문화 유적지를 외국인과 함께 가면 나의 언어와 문화를, 나가서 내가 누군지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익숙한 곳을 낯설게 보기가 가능해진다고나 할까. 그날의 깨달음 때문인지 나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랭귀지 익스체인지 (언어 교환, Language Exchange))을 한다고 하면 한국 문화를 볼 수 있는 어디를 같이 가보라고 조언했다. 컬처 익스체인지(문화 교환, Culture Exchange)를 하라고 훈수를 두게 된 것이다.




루이스는 1년 뒤에 마드리드로 돌아가서 이메일을 통해 한국의 동동주가 가장 그립다고 했는데, 루이스가 그리운 동동주는 이날 우리가 옛 주막에서 마신 동동주였기를...


민속촌_0003주막국밥.jpg 당사자가 누구냐고 묻는 그날의 Luis Frailes





동동주와 막걸리의 차이_


화면 캡처 2025-10-19 151641.jpg 구글 Cemini 답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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