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세계시민
"가마솥에는 햄, 소시지, 다진 고기, 베이컨, 만두, 떡, 그리고 보글보글 끓는 붉은 국물에 담긴 라면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한국어 수업을 매개로 서로 알게 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마드리드 사람 루이스가 저녁을 같이 먹었으면 했다. 같이 저녁을 먹는 일이라면 '자연사 박물관을 동행하는 일' 보다는 '누워서 떡먹기' 수준 아닌가. 한국어 공부가 끝나면 분식집으로 직행했던 뉴욕 사람 멀더와의 시간처럼 자연스러운 뒤풀이다. 다음 주 토요일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길래 나는 '좋다'며 시간을 비워 두었다. 서울에서 스페인어 문화권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으니 나도 루이스에게 찬찬히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이때가 2004년 3월 초였다. 루이스가 오라는 곳은 홍대 앞의 흥부 형님 부대찌개 집이었다. 꽃샘추위에 눈발이 날리기도 해서 정말 부대찌개가 생각날만한 날이었다. 나름 유명한 음식점이고 주말 저녁이다 보니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예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나였다면 당일에 결정했을 텐데 부대찌개 집을 2주 전에 예약해 놓았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교류한 외국인은 미국 사람 멀더가 처음이었고, 루이스가 두 번째였는데, 멀더는 부대찌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멀더가 한국에서 싫어하는 리스트(list) 랭킹 2위에 부대찌개가 있었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멀더의 부대찌개의 탄생 배경을 알고 있었다.
스페인 사람의 저녁을 먹자라는 말
음식점 입구로 마중 나온 루이스는 반갑게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루이스를 따라 예약석으로 갔는데, 큰 방 앞에 멈췄다. 내가 '좌식은 불편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루이스가 미닫이문을 열자 큰 방 안에 기다란 좌식 탁자에 두 줄로 사람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모두 외국 사람들이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방을 잘못 찾은 거 아닐까?'라는 표정으로 루이스를 쳐다보니 또 웃으면서 거기 맞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이 저녁을 먹자라는 말은 단체로 만나는 모임을 의미하는 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나는 긴 자리의 맨 끝에, 방문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미국 사람 멀더였다면 여러 사람이 편안하게 모이는 자리라고 미리 얘기했을 것 같다. 아니 미국사람이 아니라도 모임이라고 얘기했어야 하지 않나.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의 국적이 최소한 다섯 이상은 되겠고 생각했다. 큰 사이즈 부대찌개 냄비가 세 군데는 간격을 두고 올려져 있었다.
나는 루이스에게 진담반 농담반으로 '오늘 내가 대한민국 대표예요?라고 물어봤다. 루이스는 내 질문의 뉘앙스보다는 '농담반 진담반'이라는 어휘가 더 크게 들렸는지, 나에게 되물으려는 차에 방입구에 사람들이 또 나타났다. 내가 대한민국 대표는 아니었다. 한국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얼굴도 나처럼 놀란 표정이다. 나는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나 이 친구들도 루이스가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 한마디에 나온 것이다.
마지막 저녁 친구
부대찌개는 보글보글 끓어 가장 맛있는 단계였다. 부대찌개를 개인 접시에 덜어서 주거나 받아야 하는데, 거기 앉은 외국인들이 한국말로 대화하려고 시도하는 듯하였다. 나는 갑자기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식탁 위에서 쓰는 말로 '소금 좀 이리로 주세요(Pass me salt please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군가 한국어로 '저 국 좀 퍼 주세요'라든지 '반찬 좀 이리로 밀어주세요'라는 말을 한국어로 배우고 왔을까 그런 말이 한국어 교재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졸지에 다국적 모임에 끼어서 눈으로 말을 대신하며 이제 좀 먹으려던 차에 방문이 열리며 남녀 한 쌍이 또 나타났다. 아직도 올 사람이 있었네?라는 표정으로 다들 이 커플을 주목했다. 마지막에 온 두 사람 중 남자는 캐나다 국적의 아프리카계 사람이었고, 같이 그의 온 여자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그날의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관계를 떠올리면, 그날의 저녁 메뉴가 부대찌개였다는 것이 의도치 않게 아니게 탁월한 은유가 되었다. 온갖 재료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는 상황만으로도 그렇다.
루이스의 실수
그런데 식탁의 맨 끝에 앉아 있다 보니 접시를 내밀며, 여기에 좀 담아주세요 라는 말은 내가 그들에게 해야 했다. 나이 머릿속이 잡다한 의문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어쩐 일인지 루이스의 표정이 이상했다. '왜요?' 그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고 했다. 나는 웃었다. 마침내 루이스가 '사태 파악을 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라고 말을 헀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전달하지 못한 것을 두고 실수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다국적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니 오히려 재밌다고 했다. 그게 자신의 실수란다. 사람들을 불러놓고 다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아니 그러니까 루이스 다음에는 반씩 나누어서 만나요. 한꺼번에 다 만나지 말고." 나는 마침내 하고 싶은 얘기를 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요...' 그럼 뭐가 문제?
루이스의 저녁 초대로 마지막에 온 커플 중 남자친구가 이슬람 신자란다. 이슬람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데, 그 친구를 불러놓고 돼지고기가 든 음식을 시켰으니 자신이 너무나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마주 앉은 마지막에 온 커플 중의 남자가 나처럼 맨 밥공기만 받아놓고 있었다. 부대찌개에 돼지고기가 들어갔나? 빨리 연상이 안되었다.
고민이 끝난 루이스는 그는 음식점에서 나가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물론 이슬람 친구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부대찌개와 밥을 반쯤 먹고 있었다. 그런데 루이스가 상황을 이야기하자 모두 수긍했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일대일로 루이스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루이스는 한꺼번에 부른 것이다. 그렇게 열댓 명을 불러놓고 당연하다는 듯 한 사람 한 사람을 맞이한 루이스도 놀라웠는데, 루이스가 나가야 하는 이유를 말하자 밥을 먹다 말고 다른 집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모두 동의한 것이다. 각자의 물건을 들고 모두 일어났다. 나에게는 정말 인상적인 광경이었다.
이슬람이 종교라는 사람은 손을 저으면서 약간 겸연쩍어했다. 밥을 먹다 말고 각자의 몫을 내고 따로 갔지만 인상을 쓴다거나 불평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중 아무도 밥을 먹다 일어나야 하는 일을 되묻지 않았다. 서로 첫인사와 동시에 작별 인사를 나누고 그 와중에도 국적과 한국에 머문 날들을 확인하는 간단한 호구조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갖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완성된 맛을 내는 부대찌개가 오늘 이 자리의 성숙한 사람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부대찌개는 그 출발이 동서양의 재료가 조화를 이룬 음식이다. "그때는 먹을 게 별로 없었지만 햄과 소시지를 좀 구했어요. 그 당시 고기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군부대에서 몰래 가져오는 거였죠." "군인들이 남긴 고기로 버텨야 했어요. 부대에서 나오는 재료로 스튜를 만들었는데, 제 레시피가 그대로 복제되어 전국에 퍼졌어요." 부대찌개 레시피를 처음 고안하신 허기숙 할머니(1938~2014)의 설명이다.(한국의 컴포트 푸드가 세계화되는 과정 : How a South Korean comfort food went global , BBC, 2020.06.20)
처음 햄과 소시지를 맛보았을 때 무슨 맛이었을까. 이 재료를 어떻게 먹으면 가장 이상적인 음식이 될 것인가의 고민과 시도 끝에 부대찌개는 탄생했다. 처음에는 햄과 소시지를 볶기만 했는데, 할머니께서 운영하시던 식당의 손님이 김치와 함께 넣어 국물이 있는 음식이면 좋겠다는 얘기를 참고하여 부대찌개로 완성되었다. 서양의 식재료에 동양의, 한국의 국물 음식 문화가 합해져 하나의 음식으로 탄생한 것이다. (Why is Spam a luxury food in South Korea?BBC, 2013.09.19)
레시피가 전국에 알려졌지만 지역마다 식당마다 가정마다 넣을 수 있는 재료의 차이로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산지가 완전히 다른 재료가 조화를 이루어 풍미 가득한 음식으로 완성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콩을 파를 두부를 가래떡을 또다시 서양 음식 치즈까지 얹어져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이제 편안한 음식(Comfort food)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직 시도하지 않았거나 개인적 이유로 마다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맛의 조화를 이루는, 재료가 어우러지는 과정은 알면 알 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날 부대찌개 앞에서 성숙한 행동을 보여준 그날의 세계 시민들처럼 말이다.
https://www.bbc.com/news/world-asia-24140705
https://www.bbc.com/travel/article/20200609-how-a-south-korean-comfort-food-went-glo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