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에 가자는 외국인
마드리드는 어디쯤인가.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 외국인, 루이스의 한국어 수업을 도와주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스페인의 지리적 위치를 찾아봤다. 한국에서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에 싱가포르에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근무하던 빌딩 1층의 간이매점에서 거의 매일 간식을 사 먹었다. 정답고 친절하신 매점 주인 인도 아저씨는 서울이 국가인지 도시인지 어디쯤인지 전혀 모르셔서 묘하게 서운했던 적이 있었다. 루이스와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후 2시에 만나서 2시간을 공부하였는데, 최소한 상대 나라에 대한 기본 사항은 알아둬야 했다.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Madrid), 지도상에서도 땅크기가 어마어마하다. 포르투갈은 옆에 붙어 있는 느낌이다. 스페인 하면 투우사와 소가, 마드리드 하면 왠지 영화 <카사블랑카>처럼 제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첩보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도시가 떠올랐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의 수도) 그런 막연한 이미지를 털어 내고 대화를 풀어가기에 적당한 현실적인 주제들을 생각하려 했다. 가능한 모든 주제를 열어놓기는 하였으나 정작 루이스가 원하는 것은 예상밖이었다.
ㅣ자연사는 자연의 역사인가요.ㅣ
서울에 자연사 박물관이 있었다는 사실도 나는 몰랐는데, 루이스가 자연사 박물관에 가보고 싶단다. '경복궁도 아니고 용인 민속촌도 아니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문학 작품 주인공을 본인 이메일로 사용하는 성향을 보면 전형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였으나 자연사 박물관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이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위치가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지하철역에서 (중간에 버스를 탔는지) 내려 언덕을 한참 올라갔다. 주 5일 지하철 출퇴근에 시달리다 토요일에 등산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나로서는 언덕길부터 유감스러웠다. 서울에 사는 내가 스페인에서 온 사람이 이끄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표정관리도 잘 되지 않다가 막상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니 거기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와우!
거대한 공룡 모형이 보는 이를 압도했다. 뼈만 있는 물체였으나 보는 순간 높이와 길이가 거대함 그 자체였다. 루이스는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일회용 필름카메라는 그렇다 치고 디카에도 그 전체를 한 장면에 담을 수 없었다.
박물관은 3층으로 전시실이 크게는 연대기순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눈으로 전시된 모형들을 둘러보면서 한 두 가지 어휘를 설명해 주었다. 전시물에 붙은 설명이, 간혹 나에게도 어려운 단어들이 있기도 하였고 그런 단어들은 쉬운 말로 풀어서 알려 주었다. 그런데 전시관이 넓고 주제별 구성도 있으니 대충 둘러봐도 2시간으로는 어림없었다. 어디부터 먼저 보는 게 좋을지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루이스를 향해 '원래 우리의 한국어 수업 2시간인데 종종 이렇게 보내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런데 오늘 여기를 다 볼 수 없을 테니까.. '라고 말하려는데... 루이스가 메모지를 꺼내더니 적기 시작했다. '굳이 내 말을 적을 필요는 없어요...'
루이스는 내가 하는 말을 적는 것이 아니라 전시실 설명에 나오는 단어를 적기 시작한 것이다. 더 자세히 더 정확하게 모든 어휘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지금 자신이 한국어를 정복하겠다는 의지로 집을 떠나 여기에 와 있는데, 공부해야 할 새로운 멀아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학구열이 불타 오른 표정으로... 아뿔싸, 박물관 같은 곳에는 함부로 따라나설 일이 아니다. 박물관에 전시실 앞에서 '이 박물관의 전시 설명은 몇 단어일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한국어 한자말의 늪
전시 설명의 주를 이루는 단어들은 대부분 한자어다. 어쩌면 영어 병행 표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학명(學名 : Scientific name)도 영어로 바로 이해된다. 그런데 학명이 원래 어휘하고 한국어 표기법이 갸우뚱하게 된 것들이 있다. 어찌하여 원래 발음이 한국어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단어들이 널려 있었다. 공룡부터가 실제 발음은 '다이노소어르(dinosaur)'에 가까운데 한국어로는 디노사우르로 표기되었다. (당시에는)
공룡(恐龍) 1. 명사. 동물.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에 걸쳐 번성하였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몸의 길이가 30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고 육상에서 살았다. 화석에 의하여 400여 종 이상이 알려져 있다.
공룡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어려운 단어였던가. 나로서는 한번 읽고 말 문장이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는 이 설명 전체가 다 메모하고 찾아봐야 할 말들이다. 이 두줄의 설명을 공부하는데 2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우리말 단어를 풀자면 한자어, 무서울 恐(공)과 동물의 용(龍) 자다. '무서운 용이다.' 무서운 용치고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실제 디노사우로스의 이미지가 연결이 잘 안 되는 듯하다. 이 무서울 공의 어원을 따라가면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공룡은 그리스어 δεινόσαυρος(데이노사우로스)의 역어이다._위키백과), 디노사우로스는 뭔가 이상한 발음 이름에 공포감이 들어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한국어로 무섭다가 아닌 두렵다가 더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공룡 전공자가 아니니 '이 말이 곧 한국어로 이 말이다'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모국어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수밖에. 전공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냥 루이스가 전시장을 대충 훑고 지나가기를 바랄 뿐! 나는 머리도 아프고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멸종된 공룡이 나를 잡네’
나는 그저 중얼거렸을 뿐인데, 한국어가 이미 4급을 향해 가던 루이스는 정확히 들었다.
"... 지금 하신 말이... 멸종이요? 그 단어를 제가 저기서 본 것 같은데"...
하더니, 이미 지나온 곳을 돌아본다. 다시 나를 이끌어 간다. 공룡별로 멸종 시기가 표시된 곳이다. "이거 맞아요?" 네. '다시 몇백만 년 뒤로 왔네'. "네, 공룡처럼 한자말인데요. 그게…" 그러면서 나는 주섬주섬 사전을 찾아 보여 준다. 그러면서 '너는 디카는 있고 사전은 없네'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멸종하나 해결하는 데 20분 이상 걸렸다. 종(species)이 다 죽었어 없어졌어 사라졌어... 나는 지나온 전시장을 가로질러 앞으로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뒤를 돌아보면 루이스는 느릿느릿 보고 또 보고 메모지에 적고 다시 확인했다. 그놈의 공룡이 멸종하고 한반도 판이 떨어져 나가 일본이 바다 위에 섬으로 나누어지는 되는 시기에 이르자, 나는 정말 기진맥진해 있었다. 인간의 진화는 겨우 5백만 년 전에 이르렀다. '아니 지금 2천 년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 거냐...'
스페인 사람이나 공룡이나 나에게는 미지의 대상
장장 4시간에 걸친 루이스의 집중력에 넋이 나간 나는, 헤어질 때 대뜸 루이스더러 '전공이 뭔데요?'라고 물었다. 질문을 받은 루이스는 순간 갑자기 또 무엇인가 의문이 스치는 표정이다. 보통 전공이 뭐예요?라고 묻는데, 나는 뭔데요?라고 물은 것이다. 전공이 궁금해서 묻는 말이지만, 전공이 뭔데요? 는 '대체 전공이 무엇이관데 공룡을 이렇게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 하실까'라는 듯한 일종의 어떤 감정이 들어간 말이다.
나는 그 궁금한 표정을 눈치채고 파고 들어가기 전에 '같은 질문이에요'라고 했다. 아, 루이스는 갑자기 크게 웃었다. (언어 감각도 있고 양심도 있구먼요) 스페인어로 지질학이었던가 지리학이었던가 그랬다. 잘은 모르지만 공룡하고 관계있나? 하니 루이스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공룡 좋아해요"...... 이 친구가 특별히 소설 <돈 키호테>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런 정의가 있다. 키호티즘 (Quixotism :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앞으로 나가는 성격이나 생활태도.)
'뭔데요?'는 '무엇인데요?'의 준말로, '뭐예요?'에 비해 좀 더 친밀하고 사적인 관계에서 사용되거나, 혹은 특정한 감정(궁금증, 재촉, 때로는 불만)을 담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