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anish inn
'스페니쉬(Spanish)'라는 단어도 낯설었던 때-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2004년 1월에 서울 개봉했었는데, 루이스가 나에게 소개한 영화다. 돈 키호테의 후예와의 한국어 수업은 이제 막 두 번째 인가 그랬다. 외국어는 곧 미국 영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한국에서, 전공자가 아니라면 '스페인'도 아닌 '스페니쉬'라는 말을 듣거나 사용할 일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언어였다. 내가 '파블로 네루다(칠레)'나 '보르헤스(아르헨티나)'를 알고 있기는 하였으나, 이들의 작품은 중남미 문학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터라 유럽에 속하는 스페인과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외국 영화 자막 읽는 일은 익숙하지만 스페인어를 들어야 하는 '스페인 영화'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루이스는 "꼭 보라"며 의미심장한 미소까지 띠었다. 영화는 요즘에 빗대자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처럼 제목이 진입 장벽이었다. '스페인'이라는 말과 '아파트'라는 단어의 조합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에라스무스, 에라스뮈스
프랑스인 25살 청년 자비에는 철밥통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엄마와 이혼한 아빠 친구의 권유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경영학을 공부하기로 한다. 우리나라 한국의 분위기라면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밣는 것과 비슷한데, 당시 유럽학생들은 '에라스무스 제도'를 통하여 교환학생처럼 유학이 가능했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 네덜란드 발음으로 에라스뮈스)는 교육 제도에 이름 붙일 정도로 중세 최고의 인문 지성으로 알려져 있으나(위키백과), 자비에의 대사를 빌린 감독의 평가는 '네덜란드 떠돌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주로 프랑스어가 들리는데, 자비에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학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어처구니없이 웃긴다. 장장 스무 가지에 이르는 유학 서류를 석 달 전에 접수했는데, 그 서류가 분실되어 '간단한 서류 20장'을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야 했다. 유학도 가기 전에 자기 나라에서 차별당하는 분위기다. 루이스와 교류하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느림의 미학'을 알게 되었지만 프랑스도 만만치 않았구나 싶다.
영화 안에서 여러 나라 말이 난무하지만,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 자체가 웃겨서 자막도 대강 읽으면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비에는 고단한 서류준비와 절차를 거쳐서 프랑스에 여자 친구를 남겨두고 바르셀로나로 1년 과정의 유학길에 오른다.
유학 기간 동안 머물 숙소로 처음에는 '엄마 친구의 조카집'을 소개받기도 하고,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 동포 부부의 집 소파에서 얼마간 혼란스러운 날들을 보내다가, 자비에는 바르셀로나로 유학온 학생들이 모여사는 집을 알게 된다. 기존 거주자들의 면접(?)을 거쳐 합격(?)한 자비에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에 동질감을 느껴 아파트에 입주한다. 이 집은 일종의 공유주택인데 주방 거실 냉장고 등을 가구나 가전을 공유하고 각자의 방이 있는 구조로 웰세는 나누어 지불하는 방식이다. (집주인은 바르셀로나 사람이다.)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영국 그리고 스페인의 타라고나(Tarragona) 출신의 여학생이 있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에 자비에가 합류하고, 자비에의 추천으로 벨기에 출신 이사벨이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언어와 국적이 다른 남자넷, 여자 셋이 모여 살게 된다.
퍽이 학교라고? 조또 마떼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아파트 현관입구에 공중전화처럼 유선 전화가 걸려 있었다. 각자 2G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였으나, 안부가 궁금한 가족들의 전화는 학생들이 집에 있을만한 시간에 집전화로 온다. 전화기 옆에는 "지금 학교에 가고 집에 없어요."라는 가족 응대 문구가 각 나라의 언어로 적혀 있다. 발음이 달라도 역시나 유럽어는 라틴어 계열이니 그다지 어려운 것은 없겠지 싶은데, 그 다른 발음의 누군가에게는 욕이라면 그건 참 큰일이다.
자비에가 집에 없을 때, 자비에의 엄마가 프랑스에서 바르셀로나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영국 사람 웬디는 웬디는 응대 문구를 보면서 천천히 프랑스말로 '집에 없어요'로 답변을 해주는데,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F자로 시작하는 말이 들린다. 퍽? 자비에 엄마가 퍽 인지 팍인지 그 중간 어디쯤의 발음으로 계속 묻자 황당한 표정의 웬디는 퍽? 이라고요? 되묻자 자비에 엄마는 더 크게 퍽 퍽 거린다. 나에게도 영어욕에 가까운 발음으로 들린다. 되묻는 말인지 전하는 하는 말인지 뉘앙스를 짐작하기에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욕을 먹은 웬디는 완전히 멘붕이다.
같이 생활하는 친구 어머니가 나한테 욕했다고 자비에에게 따져 묻지는 않았지만, 웬디는 어느 날 자연스럽게 영어의 욕으로 들린 말이, "La Fac(라 팍)" 프랑스말로 학교(faculte, university)라는 의미를 알게 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일본어의 조또 마떼(ちょっと 待まて)는 '잠시 기다리다'라는 의미인데, 일본에서 처음 이 발음을 들었을 때 한 1~2초간 일종의 버퍼링이 일면서 동시에 입술을 물어야 했다. 우리말 욕과 발음이 비슷하지만, 물건을 찾는 사람에게 느닷없이 욕을 할 리가 없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까지 가장 예의 바르게 말할수록 조또의 발음이 더욱 우리말 욕에 가까운 발음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의 용광로라는 말은 적절한가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 또 개인의 이성 취향까지 다른 이 다국적 공동생활을 프랑스인 자비에는 '문화의 용광로'같은 곳이라 했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한국어 자막에 의존하여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20년 전에는 영화의 장면 장면이 웃겨서 자막이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워낙 오래전에 본 영화라 지난 메모를 정리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았더니, 이 비유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문화의 용광로. 용광로(Melting pot)는 모든 것을 녹인다. 원래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예를 들어, 2025년에 서울에 유학 온 국적이 다른 일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사는 공유주택_서울 아파트먼트가 있다면_ 그곳은 문화의 용광로일까. 문화 용광로의 의미를 '이민자들이 이민한 나라의 주류 문화에 동화되는' 원래 의미 자체에 크게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주류 문화에 '동화된다'는 의미를 '적응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말이다. 서로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것은 정말 이상적인데, 주류 문화에 흡수되어 자신의 고유성을 잃어버리는 의미라면 한 번 의문을 봐야 할 듯하다.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적 상황에서 이런 비유는 사은유(死隱喩: 죽은 은유, 독창적인 표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 관습적으로 사용되면서 진부해진 은유적 표현.)에 가까워 보인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의 의미
그때나 지금이나 스페인어는 여전히 낯선 언어라서 상대적으로 익숙한(?) 영어 자막으로 추정하건대, 당시 한국어 번역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의역을 한 것 같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에서 20대 다국적 청년들이 타지에서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다름과 선입견을 몸으로 부대끼며 세상을 배워가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는데 크게 이견은 없다. 다만, 영화 제목인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의 프랑스어 사전을 화면에 띄우는 장면은 직역이 나을 뻔했다. "이곳은 문자 그대로 스페니쉬 인이다. (This house was literally a Spanish inn(s).), 즉 문자 그대로 즉 사전적 의미 그대로라는 말이다. 스페니쉬 아파트먼트가 사전에 나오는 말이었다니...
스페니쉬 아파트먼트는 영어식 표현이며 프랑스어로는 Auberge espagnole , 스페인어로는 L'Auberge espagnole이다. 영화 제목이 영화상에 세 번이나 화면을 가득 채운다. 확실히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구성원이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거나 심지어 배타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그룹'에서 가장 안 좋은 의미로 '이질적인 집단'이라는 뜻까지 무려 여섯 가지 뜻을 가진 구(句)다. 어쩌다 스페인 하숙집은, 어떤 문화적 역사적 배경으로 사전에 실리게 되었는지도 새삼 궁금하여 루이스에게 (20년 만에) 물어봐야겠다.
유럽 문화권이 아닌 나로서는 각각의 뉘앙스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겠으나, 문화의 용광로라는 의미로 쓰인 것 같지 않다. 내가 자막을 넣는다면 원래 대사를 그대로 옮겨, 나처럼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유럽 문화에서 통용하는 언어가 가진 의미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 같다.
서로의 경계를 넘다.
자비에의 대사를 직역하여 따라가면 이 공동체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냉장고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면서 처음에는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두고 경계를 분명히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가 모호해진다. 냉장고의 경계가 무너지는 동안 실제 이들의 관계도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가 모호해진다. (사실 국적을 막론하고 20대 학생들이 모여사는 곳이니 냉장고가 처참해(?) 지는 것은 어쩐지 당연한 결과일 것 같다.) 서로의 언어나 나라(민족성)에 대한 선입견이 분명히 있었는데, 서로 어떻게 다른 지를 알아가면서 그 차이를 있는 대로 받아들이며 이해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유학을 끝낸 자비에의 선택
혼란스럽고 때로는 무질서했던 바르셀로나의 스페인식 하숙생활을 견디고 프랑스에 돌아온 자비에는 고향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익숙한 거리에서 이방인처럼 운다. 자비에는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의 친구가 원하는 철밥통 공무원의 자격을 얻었으나 취직을 하고 자신의 사무실을 소개받자 뛰쳐나간다.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다. 자비에의 소년시절부터의 꿈은 작가였다. 자비에는 1년 간의 공동생활을 한 아파트에서 만난 친구들의 모습 전체가 자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공항 활주로에서 이제 시작이야 이러면서 끝난다. 개인적으로 이 마지막이 적잖이 찜찜했다. 요즘 말로 갑자기? 그런 엔딩이었다.
자비에의 뜬끔없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결론은 당시 유럽 연합(EU) 출범이라는 배경아래 나온 결론인 것 같아서 말이다. 유럽 연합은 여러 정체성을 합친 문화의 용광로를 목표로 했었나? 지금 브렉시트(Brexit: 유럽 연합에서 영국 탈퇴) 상황을 자비에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로부터 2년, 내가 서울에서 마드리드 산다는 스페인 사람을 만나고 스페인 영화를 처음 접했던 시간으로부터 2년 후, 2006년 11월에 나는 스페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여행하였다. 특히 바르셀로나에서 슈퍼에 다녀오는 길에 자비에와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자비에가 바르셀로나에 막 도착해서 하숙집을 찾고 있을 때 중학생쯤 돼 보이는 동네 애들이 자비에를 흉내 내며 쫓아다닌다. 나도 슈퍼 앞에서 이런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는데 나에게도 거의 비슷한 말과 행동을 했다. 자비에는 스페인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듣고도 몰랐을 수도 있는데, 나는 스페인어 초급 20 과를 공부하고 또 얘네(?) 들이 아시아인에게 던진다는 욕을 어느 정도 학습하고 간 덕분에(!) 정확하게 들렸다. 나에게 어쩌고 저쩌고 치노(Chino: 중국인) 블라블라 했다.
이 아이들의 문화는 조금 바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