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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Nov 18. 2023

02_첫 수업은 충돌

ㅣ해외에서 발행된 한국어 교재ㅣ


   나는 엘마 이후 3년 만에 대망의 첫 한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지만, <미국에서 온 소나기>와의 첫 수업 또한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가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말하기 연습을 위주로 하면 좋겠다, 말하는 것과 문자 읽기가 일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등등의 내 나름의 계획을 세웠지만, 문제는 그가 들고 온 한국어 교재에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단어에서부터 문장까지 골고루 오류가 있었다. 관심 있는 분들이 아실만한 예를 들자면,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지켜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몇 년 전에 독일 친구들이 가져온 한국어 책에 ‘건배’가 ‘갈채’라고 쓰여 있었다. 이런 단어의 오류라면 차라리 마음 편했을 텐데...      



             김 선생 : 안녕하십니까

             이선생 : 네, 안녕하십니까

             김 선생 : 요즈음 재미가 어떻습니까

             이 선생 : 좋습니다.


  아...이 선생님은 요즘 재미가 좋으시구나... 혼자서는 키득키득 웃고,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재미가 어떻냐는 질문과 재미가 좋다는 문구 자체에 문제는 없지만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대화. 더구나 재미 좋냐?라는 말이 가진 가벼운 무게와 부정적인 뉘앙스. 이 간단한 대화가 가진 결정적인 오류. 

     이와 같이 부분적인 오류랄까, 뉘앙스 차이를 지적하자, 이 소나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책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즉시 아니라고 답하였다.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나는 어감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간단한 영어 두 문장을 써주고 이 두 문장의 의미가 같냐고 물었더니 다르단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야... That's what I say.  내 말이 그 말이라고. (나는 화가 나면 영어가 되더라.)


   한국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 잘 부탁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는다. 이때 잘 부탁합니다는 앞으로 서로 잘 지내보자는 의미다. 여기서 '잘 부탁합니다'를 영어로 'Please Do Me a Favor.'라고 번역해 놓은 한국어 교재들이 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앞으로 '부탁 좀 잘 들어주십시오.' 그런 의미다. 이 문장을 본 외국인들 대부분은 묘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영어 모국어자가 아닌데 이  방법이 맞을까...내가 그의 책에? (혹은 나의 공책에) 뉘앙스가 다른_ 다른 말로 들리는 영어 두 문장을 써 주었을 때,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소나기는 자신의 한국어 책을 들더니 뒷면의 출판사 이름을 손가락으로 툭툭 가리켰다. 이 책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역시 행동은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의사표현이다. 그가 본인 책의 내용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은 당연하였다. 그 초급자용 한국어 교재는 미국 명문대학 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이었다. 그런 책에 오류라니. 한국에서 커피 한잔값에 제공받을 수 있는 자원봉사자에게서 지적을 받다니. 그런 반응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손가락으로 정확히 짚은 명문대학 이름을 봐주고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전날에 인쇄소에서 복사할 때 나는 이미 출판사를 확인하였다. 아무리 미국 명문대 할아버지의 저서라도 틀린 건 틀린 거니까. 명문대학 교수의 검수를 받았다 해도 그들의 모국어가 아니니 그런 오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내 입장이었다. 1990년대에 발행된 책이다. 독일 사람 셋이 건배가 갈채로 설명된 책을 들고 한국을 방문한 해는 2017년이다. 예문이 이상하면 현지에서 똑바로 배우면 된다. 나의 '그래서 어쩌라고?' 이런 태도에 그는 몹시 당황한 기색이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까지 당황하는지 그날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소나기도 미국 명문대학 출신이었다. (그래 미국 명문대 출신의 뉴요커면 한국에서 좀 통하지.) 내가 그에게 너도 이 학교 다녔어?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은 이유는, 그 사실이 이 수업에 어떤 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나의 방침 때문이었다. 나는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전공자이며 국어전문강사로 밥 먹고 살고 있었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보이지 않는 각자의 자부심이 충돌한 첫 수업이었다.      

                             



    당시 초급자 뉴요커의 한국어 교재는 조금 다른 의미로 평생 소장해야 할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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