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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Nov 19. 2023

03_그 시절 매거진

 『유행통신』


   그는 다음 주 수업에 나왔다. 첫 수업에서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말없이 돌아간 그다. 나는 살짝 웃음이 나왔다. 물론 반가웠다는 의미다. 영어가 잘되는 사람을 동원(?)해서 조금 더 친절하게 다시 설명을 해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연락처는 물론 알고 있었다. 나도 그가 그렇게까지 당황할 줄은 예상 못하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날은 그의 유난스러운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본업에서 시판 교재들의 무수한 오류를 수정해 온 나로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외국인이니까 다른 접근을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직업병이랄지 틀린 말을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나로 인해 한국말을 배우는 데 흥미를 잃는다면 안되는데...하는 마음으로 일주일 내내 신경 쓰였다. 휘파람의 낭패를 다시 맛보는 건가.

   그는 또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책을 들고 나왔고 잊지 않고 그 다음 주 분량도 복사해 가지고 왔다. 두 번째인 이날도 나는 의미가 다른 문장을 적어주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책에 적지 않고 나의 노트에 적어서 보여주었다. 그저 불편한 마음이었다. 소나기는 고쳐주는 말을 그냥 보았다. 의기소침이라고 해야 할까. 엄격한 룰은 아니었으나 가능하면 초급자에게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영어 등급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정확하지 않은 영어로 문장의 뉘앙스 차이를 설명한다는 게 맞는 일인가 싶었다. 마주 앉아 수업은 하고 있는데 서로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는 듯 딱딱한 분위기였다. 그 미묘한 심리전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ㅣ잡지사 여기자의 등장ㅣ

     

   잡지사 기자가 어학 카페 취재차 방문한 것이다. 카메라를 맨 젊은 여성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취재는 카페 촌장님에게 이미 허락받았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이미 외국학생 옆자리에 앉았다. “여기서 한국어 공부하시는 거예요?”이러면서 말을 시키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나기의 의기소침은 바로 끝났다. 그냥 예의상 그랬는지 잡지사 기자가 옆에 앉을 때부터 표정이 환해졌다. 기자는 명함을 주면서 자신이 영어를 못하니 나에게 대신 질문을 부탁한단다.  


      나도 영어는 그다지...라고 기자에게 대답하였으나, 기자는 말은 나에게 건네면서 얼굴은 소나기를 향해있었다. 잡지 기자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하니 그는 종이에 25라고 적고 ‘한국나이’ 란다. (그런 말을 알고 있네.) “언제 한국에 오셨어요?” 잠깐 나를 보더니 “6개월 전에” (오호라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어) “한국에서 뭐 하세요? 학생?” (나도 궁금) “신문사에서 일해요” 란다. 대답이 거침없이 나왔다. 나는 들고 있던 펜을 탁 소리 내며 내려놓았다. 아... 나는 낭패를 본 것이 아니라 기만을 당한 것이 아닐까... 오늘은 대답이 청산유수네. 얘 뭐지?


  기자가 “와 한국말 잘하시네요.”라고 추켜세우자 소나기는 나를 쳐다봤다. 그러자 기자도 나를 본다. 마치 당신이 이렇게 잘 가르쳤구나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아 아니에요 오늘 두 번째 시간이에요. 만난 지 2주 됐어요”라고 답했다. 10분 양해를 구했던 기자는 궁금한 것이 매우 많은 듯해서 오늘 그냥 같이 수업을 하실래요? 하니, 소나기를 향해 “잘 생기셨네요”하며 마지못해 일어선다. 그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알아듣고 기분 째지는 얼굴이다. 또 나를 본다. 나 이런 사람이야 그런 느낌?


   내가 애초에 처음 인터뷰에서 마지막 항목까지 물어봤어야 했다. 내가 성급했다. 입구로 배웅하는 나더러 기자가 "저 친구 멀더 닮지 않았어요?" 하는 것이다... 멀더요? 멀더가 누구... 아! X파일의 멀더?... 아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더라...  


                                                                                 



  

      다음달 잡지에 멀더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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