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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Dec 05. 2023

04_분식집에서

   『삼대』를 아십니까?


    세 번째 만남에서 소나기는 자신의 한국어 교재 거의 두어 달 치를 복사해 갖고 와서 내밀었다. (자, 고칠 테면 고쳐봐라 그런 느낌) 그는 자신의 들고 온 한국어 교재의 예시 문장이 실제 한국에서 쓰는 말과 다르다는 것을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 보다. 나의 지적에 기분 상했으면 이 지극히 '주관적인' 한국어 수업에 굳이 나올 이유는 없었다.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기는 했지만, 소나기와 나는 서로 간의 작은 심리적 문화적 바리케이트를, 작은 문턱을 넘은 듯하였다. 그는 어쩐지 모를 나의 미안함을 파고들어 “선생님 배고파요? 배고팠습니까?”라고 알고 있는 시제를 총동원하여 슬쩍 물었다. 한국 나이 25세의 한창나이 소나기는 항상 배가 고프다를 어느 문장보다 더 정확하게 말했다. 이렇게 물어보면 '아니요'라고 즉시 말한다. 그러면 그는 실망한 눈빛이었다.  

   수업 후에 근처 분식집에 같이 갔다. 사적인 자리를 처음으로 가진 셈이다. 이때만 해도 그다지 친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그냥 학생이 배가 고프다고 하니까 같이 가준다는 기분이었다. 왠지 같이 가줘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다지 마음 편한 자리도 아니었다. 영어 초급자와 한국어 초급자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더구나 나는 나의 어설픈 영어로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밥을 먹던 그가 불쑥 ‘삼대’를 아십니까?라고 영어로 물었다. 삼대? ‘염상섭의 소설 삼대?' ’ 정말 그 소설을 묻는 걸까? 생각하면서 쳐다보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염상섭"이라고 발음하였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염상섭이라는 발음이 너무나 완벽한 한국 발음이라서! 원래 나이 23살의 미국 청년에게서 한국 중년 아저씨 목소리가 튀어나와서! 한 번 터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우동을 먹고 있었는데 (드라마의 그런 장면처럼) 내 입 안에 있던 우동가락이 튀어나와 그의 얼굴을 덮을 뻔하였다. 

    어떻게 삼대를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염상섭의 삼대는 1930년대 소설이다. 한국어를 잘 아는 사람도 읽기 쉽지 않을 텐데..라고 한국어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자니, 그는 일하는 영자 신문사에서 ‘삼대’ 영어 번역의 편집을 도와주고 있단다. 뭐 이상하거나 틀린 표현을 찾는 일? 그렇다면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을 읽고 있다는 얘기인데?... 음...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는 그의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어디쯤 와 있는지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x파일>의 멀더를 닮은 소나기가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전 방위적 관심(환경)은 습득하고 있는 언어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 나름대로 단계가 필요하다고는 하나, 고정된 예시문으로 '순서대로' 배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매 시간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는 기분이었다.  


   ㅣ영어 초급자 한국어 초급자_세계문학을 논하다.ㅣ  


  삼대(三代, The Three Generation)를 시작으로 세계 문학 작품의 원어 제목과 한국어 제목을 맞춰 보는 놀이를 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누구나 알만한 '로미오의 줄리엣'을 시작으로  '맥베드' '오델로'인지 '오셀로' 인지 아무튼 대개가 원제의 고유명사를 가져와서 제목을 삼았으니 그런대로 맞추기 쉬었다. 다만 '햄릿'의 발음이 '해믈릿'같이 들려서 내가 오랫동안 알고 있는 인물과는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겨울 이야기(Winter’s tale)'는 이날 멀더를 통해 처음 알기도 했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4대 비극 무엇 무엇, 혹은 4대 희극 뭐 뭐 이런 식으로 처음 접하다 보니, 그런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작품들은 작품들은 아예 모를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도대체 이런 카테고리는 누가 언제 만든 것일까.  

   모비딕(Moby Dick)에 이르니 얘기가 더 많이 달라진다. 대관절 그것은 왜 <백경>이 되었는가. 나는 한 번도 그 제목을 고래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찾아볼 생각도 없었다. 모비딕을 띄어쓰기도 없이 한 단어인양 붙여버린 제목. 한국어로 알고 있다가 원제를 접해야 그 말이 두 단어인 줄 알게 되는 것이다. 한국어로 그냥 '흰 고래' 하면 되었을 법도 하다. 그는 배가 고파서 분식집에 같이 가고 싶었을까 아니면 나의 지식의 정도를 가늠해 보는 시도를 한 것일까라는 미스터리한 기분은 그냥 단무지와 함께 씹어 버렸다. 


   서로가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그걸 어찌 되었든 같은 작품이다라고 믿었다. 우겼다. 우동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열중하였다. 헤밍웨이의  The old man and the sea.) 그건.. 가락국수를 먹던 젓가락으로 탁자 위에 노인과 바다!라고 쓴다. 그럼 제이슨은 아직 노인은 모르고 바다만 알고 있었지만 “그렇죠”라고 답했다. 노인은 모르는데 늙다는 들어봤다. (어느 날, 노인과 늙은이, 늙은 사람의 어감을 이해한다면 한국어는 마스터한 것이겠지)

    멀더의 '바다'는 아직은 '파다'로 들리고, 늙은 사람과 노인이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려줄까 말까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그는 확신에 찬 눈으로 다시금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들고있는 숟가락의 머리마저 나를 향해 있다. 마치 갑자기 '그분'이 찾아온 듯 깨달음을 얻은 자. 세계적인 문학 작품으로 한국어 제목을 정확히 알고 있단다. 갑자기 왜 자신이 여태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나 싶은 표정이다. "눈나라". 일본 소설. 노벨 프라이즈 받은 거요. 눈나라? 나스메 쏘세기의 작품까지 접해 본 나도 눈나라는 처음 들어봤다. 나는 남은 단무지를 씹으면서 그게 유명한 거라고? 혼자 중얼거렸는데 그는 원 헌드레드 퍼센트 (100%) 그 제목이 맞다고 확신하였다. 자기가 그 책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음 주에 갖고 오겠다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씰룩거린다...아...눈나라....설국!......그래 눈나라 맞네 하하하. 

                      

                           




        


커버 사진 : 


https://www.amazon.com/Three-Generations-Yom-Sang-Seop-ebook/dp/B005SZNG76/ref=sr_1_4?crid=2YBF5DVIM0ZO3&keywords=three+generations&qid=1700548008&sprefix=Three+Generation%2Caps%2C839&sr=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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