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글쓰기 시대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글쓰기가 시작된다. 숙제, 일기, 자기소개, 독후감, 논술 등등 자신의 글을 선생님이나 남에게 보여줘야 할 때가 많다. 글쓰기가 어려운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쓰다 보면 글이 늘고, 어느덧 긴 글도 어렵지 않게 되는 날이 오지만, 글을 쉽게 잘 쓰는 건 다른 문제다.
Ai 시대에 가장 키워야 할 실력이 챗 Gpt에게 제대로 된, 적절한,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글쓰기 실력을 키워야 할 이유를 하나 더 찾은 셈이다. 글쓰기 수업이라고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연습만 하는 게 아닌 주제에 맞게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하자. 처음엔 쉬운 질문 하나, 이유에 대한 질문 추가, 생각을 뒤집는 엉뚱한 질문으로 마무리한다면 반전이 있거나 단조롭지 않은 개성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동물에 대해 설명하시오."라는 글을 써야 한다면, 먼저 질문을 던지자. 질문에 답을 쓴 후 그걸 모아 글을 이어가면 평소보다 조금 더 만족스러운 글이 완성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은?
그 동물이 어떻게 생겼나요?
좋아하는 이유는?
만나면 어떻게 해주고 싶은가?
만약.. 우리 집에 온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가장 행복할 때는?'이란 질문을 던졌다. 아이패드, 닌텐도, 핸드폰, 보드게임, 레몬사탕, 게임, 미술, 축구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간혹 '엄마아빠언니'를 쓴 아이도 있었는데, 대부분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다. 미리 짜놓은 계획안을 수정해 2주 차 주제를 "내가 좋아하는 동물"로 바꿨다.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글을 보고 주제나 차수를 바꿔 호기심을 유발했다.
1주 차에 쓴 글을 스캔해서 보여줬다. 자신의 글이 화면에 나오니 얼굴이 붉어진 아이도 있고, 입이 찢어지게 웃는 아이도 있다." 야.. 김로준, 너 글 나왔어.", "선생님 왜 제 글은 없나요?" 요즘 아이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바로바로 꺼낸다. "여러분이 쓴 글을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인원이 너무 많아서 다 소개할 순 없어요. 선생님이 잘 기억했다가 돌아가면서 소개할게요. 로준이가 쓴 글을 보면.... " 로준이의 글을 예시로 들면서 이 글을 소개한 이유를 알려줬더니 눈빛이 달라졌다. 다음엔 자신의 글이 꼭 소개되었으면 하는 눈치다.
로준이가 좋아하는 동물은 구미호다. 그 동물은 꼬리가 아홉 게고 간을 먹는다. 그 동물이 좋은 이유는 무서워서다. 만나면 이렇게 해주고 싶어요의 답은 .. 저... 리.. 가이다.
(*아이들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고양이, 햄스터, 강아지는 많았지만 구미호를 좋아한다고 쓴 아이의 생각이 독창적이라 소개하고 싶었다. 구미호가 좋은데 우리 집에 온다면 '저.. 리.. 가...' 반전이 재밌다.
시언이는 사자를 좋아하는데, 사자는 노란색 털옷을 입고 있다. 사자가 좋은 이유는 쎄서 좋지만, 만나면 무섭다. 그리고 만약 우리 집에 온다면도망쳐! 라는글을 썼다. 사자가 좋지만 무섭고, 만나고 싶지만 도망쳐야 한다. 도망치는 시연이가 상상되는 생동감 있는 잘 쓴 글이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만 쓴다면 평범했을텐데, 만약 우리 집에 온다면?이라는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질문을 통해 아이들의 글에 개성이 더해졌다.
동물 이야기가 나오자 한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고양이 키울 거다요. 엄마가 고양이 데려온 댔다요. " 아이들의 ~ 다요. 말은 들을수록 정감 가고 재밌다. 그랬다도 아니고, 그랬어요도 아닌 중간 어딘가에 놓인 아이들의 사투리다. 한별이의 자랑은 그 뒤로도 몇 주간 계속됐지만, 4주가 지나자 한별이 글엔 고양이가 등장하지 않았고, 12주가 글쓰기 강좌가 끝날 때까지 한별이네 집에 고양이는 오지 않았다.
가장 행복할 때는? 사슴벌레, 고양이랑 놀 때
웃음이 날 때는? 고양이랑 놀때
한별이
좋아하는 동물은? 고양이
그 동물이 좋은 이유는? 곧 우리집에 오니까
만약 우리집에 온다면? 해피
한별이
한별이처럼 아이들은 "선생님 뭐다요."라며 다요체를 자주 쓴다. 아이들만의 사투리다. "한별이가 그랬다요!" 아이들의 말을 따라 하면 까르르 웃는다. 어른이 다요체를 쓰는 건 은근슬쩍 숨겨놓은 자기들의 언어를 들킨 거라 생각하나 보다. 잡았다! 요놈! 의 의미랄까? 다요체는 저학년 때까지만 쓰는 통용어다. 다요체를 쓰는 고학년은 드물다. 간혹 귀여운 말투로 다요체를 쓰는 어른을 TV 예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아직 아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
글을 쉽게 쓱쓱 쓰는 방식을 알려주고 싶다. 주제가 던져지면 질문을 만들어 짧게 답을 쓴 후, 그 답을 이어 쓰면 금세 글이 완성된다. 아이들은 질문에 답을 썼을 뿐이지만, 답이 모이면 글이 된다. 저학년일 땐 스스로 질문을 만들기 어려우니 부모님이나 주변 선생님들이 함께 만들어주면 되는데, 생각할 거리를 만드는 질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