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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주 May 29. 2016

여유가 없는 글

짜증의 배출이라는 문제덩어리

틈으로 여유를 쑤셔 넣으려 했는데 넣는 순간 틈이 없어 더 여유가 없어졌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끝도 없는 일에 짜증이 나고, 내 시간을 그렇게 게걸스럽게 잡아먹고도 여전히 또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들에 진절머리가 난다. 당장 손에 쥐고 시작할 의지도 없으면서 무엇무엇을 또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계속 되뇌이며 혼자 푹푹 한숨을 내쉬는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넘쳐 발끝부터 적셔온다. 피하려 뒷걸음을 칠수도 없는 시간과 공간을 짜증으로 채우고 있다.  


따뜻한 노랫소리가 들려와도 집중에 방해된다고 얼굴을 찌푸리게 되는 내가 싫다. 짜증에 파묻혀 집중이 안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걸 인정해버리면 또 다른 종류의 짜증이 날까봐 애써 외부요인을 찾아대고 그게 저 노랫소리에까지 이르게 되는게 싫다.  


친구 손에 이끌려 카페에 향하면서도 조급해하는 내가 싫다. 연달아 펑크나는 약속에, 사실 따지고 보면 작은 구멍일 뿐인데 그 작은 구멍 하나에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테트리스마냥 여유없이 나를 쌓아놓은 내가 싫다. 그 짜증이 쌓여서 자꾸 애먼 사람들에게 분출되는 것도 미안하고, 미안하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내가 싫다.


너무 짜증이나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도 친구들과의 문자에는 ㅋ을 써대는 내가 싫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내 거짓이 담긴 ㅋ이라는 글자 하나가 싫어 지웠다가 또 너무 무뚝뚝해보여서 다시 쓰다가 결국 ㅋ 두어개 정도로 타협한다. 나의 타협점은 그냥 딱 그 두어개일 뿐이다.


사람냄새에 홀린 듯 이끌려 버스를 타지 않고 사람들을 스치며 걸었던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이 문제였나. 식물도 아닌 주제에 광합성을 한다며 볕 좋은 날 벤치에 앉아있었던 이십 분 남짓한 시간이 문제였나. 아니면 근대적 시간관념을 지닌 버스에 이르러 늘어난 15분의 시초가 된 이불 속 2분이 문제였을까.


그런데 그게 문제라면 나는 지금 그 퉁퉁한 문제 덩어리에, 짜증의 배출이라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십 분 남짓한 시간을 더 얹고 있는 거구나. 문제 덩어리를 더 불리지 말아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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