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먼 곳
발트해 연안 세 나라를 다녀왔다. 가기 전에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좀 어려웠다. 이번 여행은 '환갑맞이' 이벤트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 남편이 환갑이었고 올해 청룡해에 내가 육십을 맞는다. 나이가 들어도 '환갑'이라는 말이 영 민망하고 어색하지만 하나하나 받아들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자유여행을 떠나는 게 어려운 입장이라 패키지 프로그램을 찾았다. 북유럽에서 들어가거나 폴란드에서 가는 상품이 있었는데 폴란드 쪽을 선택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특수한 관계, 그리고 폴란드가 가톨릭국가라는 점 등이 영향을 끼쳤다.
전쟁 때문에 비행 시간이 조금 더 길어져서 13시간 걸려 바르샤바 공항에 닿았다. 참 길고 길었다. 공항 근처 호텔은 아주 삭막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찍 짐을 풀고 동네 산책에 나섰는데 한참을 다녀도 갈 만한 곳이 없었다. 물류센터 같은 건물들,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들, 그 때문에 곳곳이 공사판이었다. 잠시 쉴 만한 카페도 없고 공원도 보이지 않았다. 짧은 여행자에게는 호텔의 입지도 무척 중요한데 시간이 아까웠다. 여행사야 효율적인 이동 동선 등을 고려해 숙소를 잡았겠지만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아주 좋지 않은 장소였다.
관공서로 보이는 건물 앞에 작은 기념 공간이 있었다. 1976이라는 숫자와 커다란 십자가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알려주었다. 풀꽃들 너머로 어떤 조형물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976년은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폴란드인민공화국' 당시였다. 그해 6월, 공산주의자들이 식량 가격을 대폭 인상해 파업이 일어났다고 한다. 사람들이 다치고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폴란드 사회에서 '우르수스의 억압받는 이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이 조직되기도 했다. 폴란드의 힘겹고 슬픈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다.
소련 시절의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는 육교들, 어떤 통로들, 좀 아득했다. 일요일이어서 애써 찾아간 마트도 문을 닫았다. 노점 과일가게에서 납작복숭아나 살구, 체리 등을 사고 싶었는데 우리는 폴란드 돈 즈워티를 갖고 있지 않았다. 노점이니 카드도 쓸 수가 없고 유로를 받지도 않아서 과일을 못 사고 말았다. 다행히 폴란드의 'CU' 같은 가게가 곳곳에 있어서 저녁에 먹을 맥주와 간식을 샀다.
해 질 무렵 석양이 뜨거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