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으면 온 누리에 ‘꽃’의 자취가 사라진다. 봄과 여름 내내 사람들을 한없이 설레게 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하던 꽃들은 이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떨어뜨려 미래를 기약한다. 그리고 이내 가을을 장식하는 드문 생명체들이 고요히 꽃을 터트린다.
흔히 바위 위에서 자라는 바위솔도 깊어가는 가을의 쓸쓸한 풍경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존재다. 크기와 잎 등 조금씩 다른 바위솔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을 얻었다. 그 가운데 좀바위솔은 말 그대로 바위솔보다 작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꽃이 만개할 즈음 10-15센티미터 정도로 자란다.
사실 바위솔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그저 그림 속에서 본 바위솔은 선인장처럼 별 느낌없이 스치곤 했다. 산속 바위에 자라는 까닭에 산에 가지 않으면 볼 수가 없는 식물이라 더 낯선 존재였다. 좀바위솔을 처음 들여다봤을 때 작은 꽃을 만날 때 늘 그렇듯이 볼수록 어여쁜 그 모습에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원래는 좀 작다는 의미로 ‘좀’이라는 이름이 붙었겠지만 ‘좀스럽다’거나 ‘좀벌레’ 같은 단어가 떠올라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에게는 차라리 이명인 ‘애기바위솔’이 더 어울린다. 가만히 꽃을 보면 빽빽한 이삭꽃차례 속에서 꽃이 피어오른다. 다 자라도 20센티미터 정도의 키밖에 되지 않은 꼬마 생명체가 해내는 놀라운 일이다. 연붉은 꽃잎 속에서 긴 타원형 꽃잎과 거의 비슷한 키로 터져나온 열 개의 수술 끝에 자줏빛 꽃밥이 매달려 있다.
좀바위솔은 두툼한 잎사귀 덕분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수분을 보충하며 생존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존력이 강하다 해도 사람들의 손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더욱이 몇 해 전 항암효과가 있다는 언론의 보도 이후 이끼까지 통째로 거둬가는 일이 잦아서 보기에도 넉넉하던 자생지가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무방비상태인 식물에 가해지는 사람들의 폭력 때문에 보기가 힘들어진 탓에 좀바위솔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애틋했다.
좀바위솔은 미시의 세계다. 모르고 살 뻔한 너무나도 작은 세계. 그 안에 그토록 어여쁜 생명이, 또 하나의 프랙탈이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