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 고향의 성당 같은
비아위스토크로 접어들었을 때 길 옆으로 이 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외벽 곳곳이 일어나 보수가 시급해보이는 상태였다. 그곳에서도 한참을 달려 호텔에 닿았는데 멀리서도 그 성당의 탑이 보였다. 비 그치고 무지개도 스러진 뒤 붉은 석양 속에 성당의 탑이 도드라졌다.
9시에 출발하는 날이라 여유가 있었다. 성당에 다녀왔다. 아침 먹기 전에 벌써 7천 보를 걸었다. 아침 공기는 상큼했다. 전날 비까지 뿌렸으니 더더욱 대기가 맑았다. 시야가 환히 트이는 도시. 마트 뒷길로 성당이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갔다. 한참을 걸었는데 습지가 나오고 길을 돌아가야 했다. 큰 길가에는 깨끗하게 가로수가 이어지고 자전거도로와 인도가 안전하게 확보돼 있었다. 워낙 큰 성당이어서 굳이 지도가 없어도 됐다. 성당과 또 다른 방향에는 정교회 둥근 지붕도 보였다. 시간이 된다면 들러보면 좋을텐데.
길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는 곳에 풀꽃들이 아무렇게나 피고지고 있었다. 문득 도시 한복판이 야생 같았다. 야생의 초지를 걷는 기분이었다. 매년 갈아엎고 식재하는 꽃이 아니라 그냥 피었다가 지고 다시 때가 되면 피는 풀꽃들이 참 반갑고 예뻤다.
성당 앞에는 넓은 터가 있었는데 용도를 잘 모르겠지만 차도 많고 사람들도 많았다. 청년들도 뭔가를 기다리는 분위기였는데 일터에 가기 위한 것인지 공부하러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언덕-사실 그다지 높은 곳은 아니었지만- 위의 하얀 성당으로 가기 위해 아주 완만한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끝에 하느님의 자비 조형물이 서 있었다. 이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무척 가깝고 친근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만큼 정말 하느님의 자비가 이들에게 항상,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내가 굳이 청하지 않아도 이미 그렇겠지만, 그래도 내 가난한 마음 한 조각이라도 거기 보태고 싶었다.
성당은 6시에 문을 연다고 했다. 아직 시간이 안 돼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대한 성당 못지않게 키가 큰 나무 십자가가 성당 옆에 세워져 있었다. 또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장치였다. 한 할아버지가 조용히 십자가 앞에 나아가 손으로 만지고 잠시 기도하고는 '하느님의 자비' 상 쪽으로 가셨다. 남편이 성당에 들어가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오 딱 여섯 시에 여는 건 아닌가봐?"
계단을 올라서는데 벽에 누군가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이 지역에서 순교한 분들인 것 같았다. 뭔가를 지키며 사는 것이 '순교'를 요구할 만큼 고됬던 역사가 이곳에도 있었다.
성당 안에도 한 할아버지가 기도하고 계셨다. 저 앞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있고 그 앞에 장궤틀도 보였다.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가 장궤하셨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새하얀 셔츠를 깔끔하게 입은 남자가 나타나 뭔가 말을 걸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인가 싶었는데 다음 순간 거의 손을 잡듯이 나를 이끌었다. 뭔가 보여주려고, 알려주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그는 두 가지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하나는 '하느님의 자비'이고 또 하나는 좀 더 독특한 것이었다. 한눈에 알아봤다. 예루살렘 거룩한 무덤 성당의 그 공간이란 걸!
폴란드의 작은 도시에 왜 이 무덤 경당을 재현해놨을까. 사람들은 무슨 생각, 무슨 바람으로 이 공간을 만들었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성당의 이름이 '주님의 부활 성당'이었다. 이 소박한 사람들은 죽어야만 부활할 수 있다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담아 예수님이 묻힌 성소를 매일의 일상에서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뜬금없었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난 그에게 고맙다고, 말이 안 되니 눈빛으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그들의 성소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곳을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른 새벽 성당을 서성이는 낯선 이방인이지만, 이른 새벽 성당을 서성이는 건 필시 같은 그리스도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들과 '같은' 마음이라고 믿으면서, 자신들의 귀한 곳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가능한 오래 그곳에 머물렀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시 본당으로 내려와 둘러보는데 또 한 분의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낡았지만 정갈하게 양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시면서 또 길을 알려주셨다. 이미 알고 있다고, 들어갔다 왔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다시 성소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선 곳은 어쩌면 예루살렘이라는 현실에 존재하는 예수님의 무덤이 아니라 한평생을 신앙 안에서 살아온 이 사람들의 마음속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안으로 나를 초대했다.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고 친절한 표정으로 낯선 이를 이끌었다. 사실 그 할아버지는 아버지 같았다. 아마도 그래서 더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남편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분은 꼭 장인어른 같으셨어. 옛날에 아버지랑 미사에 갔을 때 그 작은 양반이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간절해보였던지, 얼마나 깊이 자신을 맡기고 있는지를 ...그때 좀 놀랐어. 평소 아버지 모습이랑 많이 달랐거든."
아버지, 하느님 앞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어떠셨을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 처음으로 그 순간들을 기억해 보았다. 아버지는 기억 속의 모습으로 다시 오시지만, 성당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분의 눈빛은 이미 흐릿해지고 있다. 나는 이미 이 도시를, 이 성당을 좋아하고 있었다.
성당은 뜨거운 마음을 모아 지었지만 운영에는 어려움이 큰 것 같았다. 너무 규모가 커서 여기저기 보수하는 게 엄두가 안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는 가톨릭국가다보니 성당에 들어갈 때 돈을 내지 않는다. 위로 올라갈수록 성당 출입에도 입장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돈을 내야 하는 성당은 '우리집' 같지가 않다. 그러니까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의 성당은 여전히 '우리집' 같았다. 마음이 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