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 비아위스토크
폴란드는 인구의 95%가 가톨릭신자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비아위스토크만 해도 무척 다종교적인 도시여서 1900년대 초에는 세계의 어떤 도시보다 유다인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심지어 1930년경에는 도시 주민의 거의 절반이 유다인일 정도였다. 당시 60개가 넘는 유다교 회당이 있었다는데 제2차세계대전 때 대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전쟁 후 살아남았던 세 곳도 1960년 후반에 이르러 모두 문을 닫았다. 지금도 비아위스토크는 폴란드에서 정교회 신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11곳의 정교회 성당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사 일정에서 가게 되는 곳은 가톨릭 성당 한 곳과 벽화거리, 그리고 브라니키 궁전뿐이었다. 정교회 성당이나 유다교의 자취 등은 만나볼 수 없었다.
일정을 보고 성로크성당을 검색했을 때 그 쌩뚱맞은 외관에 심드렁했다. 마치 에펠탑이 지어지던 당시 파리 시민들의 시선으로 그 성당 이미지들을 보았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기괴해보이는 콘크리트 더미라고 혹평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찬란하고 독특한 모더니즘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 비아위스토크의 한 사람이 "우리 비아위스토크 주민들은 로크성당이 없는 이 도시를 상상할 수 없답니다."라고 표현한 걸 보고 '아, 외관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의미들이 중요한 거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히, 그 성당이 그 도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된다면 다른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나는 그 자체를 존중하면서 스쳐지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미리 그 외관을 보고 갔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성당 옆에 버스가 섰을 때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심지어 맑고 파란 하늘 아래 새하얗게 세워진 성당이 아름다워보이기도 했다. 옛날엔 가톨릭 신자들의 묘지가 있었던 로크 언덕에 폴란드 독립을 기념하며 세워진 성당이었다. 본당은 우선 몇 개의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는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성당 건물 전체는 독특하게 빙 두른 성곽 같은 원형 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성당을 바라보며 서서 건축 양식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본당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 중 여러 분이 성호를 그으며 들어가셨다.
본당에 들어가기 전에 옆문이 하나 있어서 당겨봤는데 잠겨 있었다. 그런데 본당에서 나오자 인솔자가 문이 열렸다며 꼭 다녀오라고 했다. 뭔지도 잘 모른 채 앞사람을 따라갔는데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왔다. 성당 자체가 언덕에 있어서 환했지만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리포와 거리가 쭉 내려다보였다.
성당을 짓는 과정, 축복을 하던 날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이 도시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 조금 더 조심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성당을 내려와 리포와 거리를 따라 내려가려고 할 때 미하우 소포코 신부의 자취를 만났다. 비아위스토크에는 몇 개의 탐방 코스가 있는데 '복자 미하우 소포코를 따라가보는' 여정도 있었다. 탐방은 로크성당에서 시작해 그가 안치돼 있는 '하느님의 자비' 성당까지 이어진다.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바로 여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