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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Sep 07. 2021

시칠리아, 팔레르모 대성당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려진 것처럼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본산이다. 지금도 마피아가 구석구석에 있어서 제대로 질서유지가 어려운 정도라고 한다. 마피아를 척결하고자 했던 법조인들이 테러를 당하기도 했는데, 1993년에는 반 마피아 활동을 하던 주세페 피노 푸글리시(Giuseppe Pino Puglisi) 신부가 생일날 마피아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강도질을 하고, 마약 거래에 이용되고, 밀수 담배를 팔다가 마피아에 가입하는 일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했다. 그냥 예수처럼,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서 학교를 만들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애쓰다가 자기 본당 앞에서 총격을 받았다. 신부는 2013년 시복되었다.      






 "......간혹 사람들은 마피아가 갈취, 살인, 폭탄 테러 등을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 피노 신부는 거의 1만 명이 사는 지역에 중학교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 진짜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지옥의 시작은 시선을 내리고, 눈을 감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시칠리아가 아는 자발적인 믿음, 즉 ‘그 무엇도 세상을 바꾸지 못할 거다’라는 숙명적인 편안한 믿음을 강화하는 거다.....돈 피노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린 신에게 의지한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에서



그 푸글리시 복자의 무덤이 팔레르모 대성당에 있었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종종 복자의 사진과 관 앞에 서서 기도하고 떠나곤 했다. 푸글리시 신부는 오랫동안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를 쓴 알렉산드로 다베니아도 그 학교를 다녔고, 피노 신부에게 배웠다. 책의 제목은 마피아가 사제를 쏜 그 순간, 그의 마지막 말이다. 총을 쐈던 살바토레가 나중에 그렇게 증언했다. 그리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죽었다. 책에서 다베니아는 이렇게 썼다.


.....돈 피노 신부의 웃는 얼굴이 행복은 삶을 연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확장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홀로 싸웠던 것도 같다. 팔레르모의 추기경은 마피아보다 공산주의가 더 무섭다며 마피아의 폐해를 외면했다. 그는 어떤 지원도 없이 고향 브란카치우에서, 가난하고 숨 막히는 마피아의 그물 속에서  두려움으로 수동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켜보고자 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치고 삶을 바꾸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모두가 뭔가를 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당연히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악은 견고해지고 마피아는 브란카치우를 영원히 지배할 수 있다.      

 



한 청년이 그의 관 앞에 한참을 고개 숙이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며 우리 시대의 좀 더 미묘하고 좀 더 거대하지만 더 위력적으로 유혹하는 악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악을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것인가?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시는”(시편 45,8) 하느님을 나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인가?    

 

마피아는 명백한 악이다. 그러므로 마피아를 미워하고 그에 맞서는 성직자를 염려하고 존경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명백한 악만 있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이 시대에 ‘환경 파괴’는 명백한 악이지만 때로는 입장에 따라 악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모호함이 발생한다. 분명히 복음의 시각은 명확한데, 우리는 사실 복음의 기준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잣대로 복음을 알아들으며 살아간다.      


미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가 급격히 하락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는 설문조사 기간에 남미를 순방한 교황이 “소득 불평등은 물론 돈의 우상화와 기후변화에 관해 비판한” 데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하며, “이는 대부분의 보수층이 좋아하지 않는 주제”라고 덧붙였다. ‘보수층이 좋아하지 않는 주제’를 비판하면 교황의 인기가 떨어지고 교회도 비어 가게 되는 것인가?     


 마피아 때문에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은 다름아닌 시칠리아 사람들일 것이다. 그 고통의 한복판에 푸글리시 복자의 죽음이 희생제물로 바쳐졌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의 죽음 이후에 뭐가 달라졌을까? 누군가는 또 자신이 해야 할 뭔가를 했을까? 푸글리시 신부는 "Se ognuno fa qualcosa, allora si può Fare molto"(모두가 무언가를 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엇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팔레르모는, 내게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름다운 풍경과 화양연화를 가진 모자이크 같은 도시. 그래서 마음 한편에 부러움이 배어든 채 그 도시를 만나곤 했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보다 우울한 건지도 모르겠다. 마피아라거나 폭력, 말하자면 끔찍한 적폐는 현실이다. 대부 시리즈 같은 영화가 아니다. 숨을 조여드는 공포가 일상이 되는 세계가 아직도 이 멋진 도시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 너무 단순하게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고향’이라는 정도의 명제만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브란카치오의 상황이? 피노 신부가 죽은 후 몇 년이 지난 2000년에 브란카치오에 중학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돈 주세페 푸글리시’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가 떠난 지 30년이 다 돼 가는 오늘도 시의회가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설립 자금을 거부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푸글리시 신부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지옥이 아닌 다른 세계를 끊임없이 찾고, 확대하려 했다. 그렇게 애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진행 중인 삶이었다. 사랑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키 160센티미터에 머리카락이 솔솔 빠진 낼모레 60이던 한 남자.....그런 사람이 이 아름다운 도시에 살았고, 이제 이 영화로운 대성당에 잠들어 있다. 어쩌면........그는 브란카치우의 자기 본당, 바람 불고 햇살 뜨거운 그 마을에 머물고 싶지 않았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하지만, 그가 여기 있어서 나도 그를 만났으니 그 또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것이구나. 




옥합을 든 마리아 막달레나가 어느 기둥에 서서 시칠리아의 운명과 봄바람처럼 오가는 이방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다녀가요, 마들렌. 또다시 팔레르모에 다녀가요. 정말 고마운 일. 오래오래 고마워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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