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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Jun 01. 2023

어디에나 있는, 어디서도 예쁜 제비꽃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정말 많다. 우리나라에만 60여 종이 핀다고 하는데 제대로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아직도 나는 그냥 다 제비꽃이라고 한다.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리던 그 꽃은 예나 지금이나 잘 자라고 널리 퍼져 있다. 

제비꽃은 언제부터 어디까지 피어났던 걸까.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피는 꽃무리의 하나인 제비꽃은 사랑의 전령이기도 했다. ‘바이올렛’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됐다는 그리스 신화의 슬픈 사랑 이야기도 전해지고, 이슬람의 이야기에도 이 작은 꽃이 등장한다. 좀 뜬금없지만 이 꽃은 나폴레옹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나폴레옹이 워낙 제비꽃을 좋아해 첫 아내 조세핀에게 늘 선물했고, 웨딩드레스에도 제비꽃을 새겼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엘바섬으로 추방당할 때 ‘제비꽃이 피면’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그 후 나폴레옹의 (정치적) 상징이 돼버렸다. 

중세에 서양에서 제비꽃은 다양한 상징으로 전해졌다. 늘 조심스럽고 고요히 피고 지는 까닭에 ‘겸손, 겸양’의 이미지가 성모마리아를 가리키기도 했다. 그보다 더 강력한 상징은 그 고통의 쓰라린 색 때문에 예수의 수난을 가리켰다. 예로부터 자색은 고귀하고 장엄한 색이었다. 그 가운데 청색이 조금 더 강한 제비꽃의 자색은 사순시기의 색이자 대림시기의 색이기도 하다. 수난의 색이자 기다림의 색, 제비꽃의 색이다. 


무척 중요하고 각별한 사연도 갖고 있는 서양에 비해 우리에게 제비꽃은 조금 애잔한 느낌이다. 조동진의 ‘제비꽃’ 이미지가 좀 컸던 건지도 모르겠다. 작은 키로 여기저기 옹기종기 피는 제비꽃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영락없이 괴테의 ‘제비꽃’이 현실이다. 나 역시 어딘가로 제비꽃을 찾아 간 적은 없었다. 제비꽃은 어디든 피어 있었다. 너무나 예뻐 발길을 멈춘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제비꽃을 찍겠다고 일부러 목적지를 찾은 적은 없다. 늘 거기 있으니까, 어디에든 별 다를 바 없이 피어 있으니까. 이 작은 꽃들은 고궁에도 무수히 피어들 난다. 발밑에 흐드러지게 핀다. 그 옛날 고궁에 사람들이 살 때도 그랬을까? 그때는 이 꽃을 어떻게 했을까? 그 사람들이 보던 꽃을 오늘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은 늘 뭉클하다. 그때도 이렇게 피었던 것일까? 그렇게 피었다가 지는 몇 백 년을 살아온 거니?


제비꽃. 동검도(2022. 4. 23.)


성균관 문묘와 명륜당에도 제비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난다. 대단한 기세로들 피어난다. 무리지어 기세 좋게 피어나는 꽃들의 나날이다. 매화도 개나리도 홀로 피지 않는 봄날, 다정하게도 옹기종기 피어난다. 6월이 지날 무렵 제비꽃이 열매를 맺으면 개미들이 분주해진다. 씨앗에 붙어 있는 엘라이오솜(elaiosome)이 개미 유충에게 유익한 영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제비꽃은 더 널리 씨를 퍼트리게 된다. 어느 날은 명륜당에 앉아 부산하게도 오가는 개미들을 보았다. 생각보다 빨랐다. 어릴 때도 개미를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그렇게 빨랐던가 싶었다. 개미는 12시간 일하는 동안 8분 정도 쉰다고 한다. 정말 끝없이 끝없이 달리는 개미가 시시프스 같아 보이기도 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개미에게 한 생이란 어떤 것일까. 


제비꽃과 개미를 바라보다가 좀 혼란스러워졌다. 목적이 되지도 못하는 이 작은 꽃과 개미만으로도 세상의 신비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사실을 너무나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의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긴 더 놀랍고 더 두려운 일 앞에서도 어떤 신비라거나 가치라거나 그런 비가시적인 의미 속으로 들어가는 게 낯익은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순간은 조금 독특한 요구를 느낀다. 꽃의 요구, 꽃들의 요구. 꽃들이 알려주는 길이다.

  

제비꽃. 동검도(202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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