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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Jun 01. 2023

무게를 배운다, 한계령풀

그러니까 우리는, 겨울을 지나온 자취로부터 샛노랗게 생명을 피워내는 꽃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즈음은 어디나 그렇지만 태백산 유일사 부근 한계령풀 군락지에도 다 바스라지지 않은 낙엽과 부유물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어서 무척이나 정신없다. 찍어 온 사진을 모니터로 들여다보면 정말 생명력 가득한 폐허 그대로다.

그 산기슭에 엎드려 꽃을 찍다 보면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가을 지나 겨울을 겪으며 광풍과 진눈깨비와 아직 낙엽 아래 녹지 않은 눈까지, 마치 툴툴 털어내지 못해 숱하게 나를 쿡쿡 찌르고 허방에 빠지게 하는 내 안의 풍경과도 닮았다. 그럼에도 저 정신없는 것들이 꽃들에게 양분이 되고 바람막이가 되고 생명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처럼 내 안의 온갖 정신없는 기억들, 흔적들, 부끄럽기도 하고 잘라버리고 싶기도 하고 말끔하게 치워버리고 싶은 마음의 장애물들이, 어차피 공존하고 있는 그것들이 내게도 유익하게 작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자양분을 얻어 꽃을 피우는 식물들 역시 제 몫의 무게를 감당한다.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핀다. 생명은 스스로도 감당해야 할 존재의 무게이다. 꽃들을 피워내는 저 배경이 과거로부터 자양분을 얻듯이 나 자신도, 우리 사회도, 그렇게 꽃을 피울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된다. 




돌아와서야 본다, 꽃들의 무게를

짊어진 한 생의 노정을     

저토록 알알이 껴안은 또 다른 생들

그래서 자꾸만 무거워진 어깨를

돌아와서야 본다      

우리는 잃어버린 어떤 것들을

꽃들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인내와 침묵, 숙명을 받아들이는 분투

쉽게도 포기하고 쉽게도 끊어버리고 쉽게도 떠나며 사는 

쉽게도 잊어버리고 쉽게도 타락하고 마는     

무엇보다 저 무게를,

한낱 꽃이 짊어진 생의 무게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생, 덩달아 짊어져야겠다는

서툰 다짐을 하게 하는 한계령풀


한계령풀, 태백산(2021. 4. 17.)


구원은 결핍을 채워 완전해지는 일이다. 질병도 결핍이고 악한 마음도 결핍이다. 가난도 결핍이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도 결핍이다. 결핍의 충족, 결핍의 치유. 넘치는 걸 탐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구원에 이르는 길에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다. 

“…허위와 거짓말을 제게서 멀리하여 주십시오.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저에게 정해진 양식만 허락해 주십시오”(잠언 30,8).



나는 아구르의 기도를 할 주변머리도 못되지만, 가진 게 너무 없어, 절대적 가난, 절대적 외로움, 절대적 슬픔과 절대적 그리움과 상처들로부터 여전히 부자유하지만 그래도 내 안에서 아구르의 기도는 어떤 지표가 되어 준다. 내가 비록 가난하지만 인간의 상태에 있기를, 짐승보다 못한 욕망으로 비인간화되는 일은 없기를, 여전히 구원이 필요한 모두에게 연민으로 눈물지을 수 있기를. 그 순간 나는 아잔차 스님의 오두막에 머문다.      

그런 기도가 채워지려면 정말 줄탁동시가 필요하다. 내 결핍을 알아야 그 장애를 낫게 할 청원을 할 수 있다. 어쩌면 가장 먼저 명약관화하게 들여다봤어야 할 일을 바라보지 않았다.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르시스의 길만이 아니다. 그것은 메두사의 얼굴이기도 하다. 진실을 대면하는 두려움, 죽음에 이를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인 자신과의 대면. 늘 피하며 지나온 시간은 두려움의 노예였다.      

꽃에게 배운다. 오늘도 그렇다. 실은 꽃들을 만드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가 내게 좋은 교사를 보내셨다. 그나마 오늘은, 그가 하시는 말씀을, 그가 주시려는 양식을 아주 조금은 받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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