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성북동 길상사 경내에 우리 꽃들이 심어졌다. 여름 가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 피는 상사화 소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곤 한다. 봄을 알리는 영춘화가 담을 타고 흘러내리는 풍경도 늘 반갑고 법정스님 유해가 모셔진 진영각 앞 뜨락에서는 앵초도 핀다. 길상사에서는 귀한 삼지구엽초도 피고 청매도 파르라니 피어난다.
요즘 꽃들은 옛날처럼 순서를 따라 피지 않는다. 개나리가 피고 백목련이 피고 자목련이 피고....모란이 피던 때는 지났다. 꽃들의 개화 시기가 기억에 있는 사람들은 참, 헛갈릴 수밖에 없다.
길상사에서 매발톱꽃을 보면서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리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떤 기록에서 중세에 매발톱꽃이 성모마리아의 슬픔을 상징했다고, 혹은 비둘기 모양의 꽃 때문에 ‘성령’을 상징했다는 글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백합과 장미와 함께 성스러운 꽃으로 여겨졌다고도 하고, 꽃 안에 별 모양이 있어 악귀를 쫓는 힘을 가졌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꽃의 모양 덕분에 여러 가지 의미가 덧붙여졌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중세 회화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무척 ‘유명한’ 꽃이었다. 뜻밖이었다.
아마도 맨 처음 매발톱꽃을 본 건 나도제비란을 보러 간 홍천의 골짜기였다.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폭포 바람에 매발톱꽃이 흔들렸다. 사람들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계곡이었다. 그리로 오가는 길에도 매발톱꽃은 쭉 길따라 피어 있었다. 그토록 많은 꽃이 피고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기세 좋게 핀 길이었다.
아마도 이름 탓이었을 것이다, 딱히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은. 왜 ‘매발톱’인가 말이다. 영어 이름 columbine도 ‘비둘기’라는 뜻의 라틴어 ‘columba’에서 왔다는데 말이다. 비둘기와 매는 상징적 의미에서도 거의 대척점에 있는 것 아닌가? 어찌 됐든 매발톱꽃에 종교적인 의미가 많았다는 걸 안 후론 조금씩 꽃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마음의 변화가 좀 우습기도 했다.
여전히 길상사에는 매발톱꽃이 고아하게 피어있었다. 늘 피어 있던 적묵당 앞만 아니라 심지어 극락전 맞은편, 늘 상사화가 피는 자리에도 매발톱꽃이 흐드러졌다. 하얗고 파랗고 보랏빛인 매발톱꽃이 오후의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은방울꽃과 큰으아리와 흰함박꽃까지 피었다. 연등도 환한 길상사, 부처님 오시기 전에 꽃들이 미리 축제를 알리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