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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Jun 01. 2023

보기만 해도 그저 좋은 금강애기나리

만날 때마다 반가운 금강애기나리가 중함백 가는 길에 무리지어 피었다. 그냥 길 가에 옹기종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 좋아서 헤헤헤 웃었다. 좀 바보 같아 보이는 웃음이었을 거다. 그렇게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좋았다. 이렇게 뭔가가 아무 생각 없이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좋은 것이 많을수록 부자가 아닌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유함 아닌가. 그러니까 꽃을 좋아하고, 꽃이 있는 들과 산이 좋은 사람은 부유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귀한 부를 오래토록 누리고 싶다. 

거기 그렇게 피어있는 꽃, 아무데서나 볼 수는 없는 꽃. 그래도 어딘가에는 어김없이 피어나 이렇게도 좋은 금강애기나리! 무상의 기쁨이, 발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금강애기나리의 미덕은 보는 이에게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다. 주근깨 소녀 같은 꽃 덕분에 사람들은 어떤 기억들을, 천진했던 순간들을 연상하며 반가워한다. 중년 남성들도 사춘기 시절의 어여쁜 추억을 소환하며 일순 소년이 되어보기도 하는 것 같다. 


금강애기나리(2019. 6. 6.)


이름이 존재를 더 잘 드러내줄 때 때로 갑절의 반가움이 인다. 누군가도 같은 생각으로 바라본다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만난다는 것, 그 공감 때문일 것이다. 문득, 이 ‘말괄량이 삐삐’ 같은 꽃의 이름이 ‘금강’이라니 궁금해졌다. 금가루를 뿌린 듯한 얼굴에서 뭔가 금강이나 화엄, 이런 세계가 연상된다는 것일까? ‘그렇게 장엄한 의미이기에는 이 꽃이 너무 해맑은데, 너무 경쾌한 장난꾸러기 같은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금강산 자락 진부에서 처음 발견돼 금강애기나리, 진부애기나리로 불렸다고 하는데, 아마도 보다 귀하고 의미 있는 것을 가리키는 ‘금강’에 방점을 찍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이아몬드를 금강석이라고 할 때의 그 ‘금강’! 그리고 이어지는 이름이 ’애기나리‘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보석처럼 작은 나리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없는’ 얘기를 해야 한다. 이제 이 꽃의 정식 이름은 ‘금강죽대아재비’가 되었다. 이 꽃이 ‘애기나리속’에서 ‘죽대아재비속’으로 분류가 되면서 이름도 바뀌었다고 한다. 죽대아재비속은 백합과 식물 가운데 드물게 그늘에서 자라는데 왕죽대아재비는 금강애기나리와도 비슷하긴 하다. 

우리나라 식물명은 ‘국가표준식물목록’(국립수목원)과 ‘국가생물종목록’(환경부) 두 가지가 있는데 현재 두 곳의 표기가 다르다. 금강죽대아재비(국가생물종목록)라고도 하고 금강애기나리(국가표준식물목록)라고도 한다. 


이 꽃에 아재비라니! 그런데 ‘아재비’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이 꽤 많다. 미나리아재비, 벼룩아재비, 별꽃아재비, 만수국아재비 등. 아재비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심지어 미나리아재비의 꽃말은 ‘천진난만’이다. 꽃이름을 지을 때도 많은 생각을 할텐데 아무튼 나는 아직 금강애기나리라고 부르는 게 좋다.





봄이 오자 

맡겨 놓은 것처럼 꽃을 찾아다녔다     

무엇 하나 내 수고는 없는데

햇빛 한 줌 바람 한 자락 비 한 방울 

어찌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눈앞에 차려진 꽃들의 향연에 

울컥 꽃처럼 솟구치는 말     

이 꽃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무엇도 탓할 수 없고

무엇 하나 아쉽다고 못하겠는     

꽃이여

길동무여     

네 불완전한 여정을 만나며

온 생명으로 주고자 하는 우정을 

받아 안는다     


*불교 식사 전 기도 오관게에서 ‘나의 부족한 덕행으로 감히 공양을 받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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