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천인 산이 있다. 천마산이나 세정사 계곡, 광덕산 같은 곳이 그렇다. 그곳에 들어서면 발길마다 기다리고 피어 있는 꽃들을 보느라 속도가 느려진다. 그런데 처녀치마 만나러 올라가는 북한산 진관사 뒷길은 아무리 봐도 꽃이 안 보였다. 덕분에 처녀치마는 어디 피었을까만 생각했다.
산을 오르자 진달래가 기다리는 마음에 안겨들었다. 빛이 좋은 시간, 햇빛을 고스란히 받은 진달래꽃이 어둑한 숲 속에서 등불처럼 반짝였다. 걸을 때마다 다른 배경에서 피어난 진달래에 푹 빠져 걷다 보니 ‘진관사’가 ‘진달래 진’ 자를 썼나? 어이없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진달래는 먹는 꽃 / 먹을수록 배고픈 꽃……’
조연현의 시구가 마음에 떠오르는데 마음이 자꾸 반짝였다. 배고픈 기억도 다 잊고 진달래꽃 꽃등에 마음이 물들어버렸다.
꽃은 물든다
햇빛에 물들고
비에 물든다
한낮의 산에 불 밝힌 저 꽃들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꽃은
빛과 그림자 뒤섞인 틈에 꽃등 들고 선 신부,
제 안에 불 밝히고 저리도 환히 피어난 슬기로운 처녀들
꽃처럼 산다는 건 저렇듯 유순하게 빛에 젖는 일
기꺼이 무언가의 일부이길 두려워하지 않는 일
아름다운 당신께 물들기를 순식간에 갈망하는 일
그러니 얼마나 먼 일인가, 꽃을 닮는다는 건
겸허하게 꽃등 하나 밝히지 못하는 나는
이쯤 되면
길 하나는 만들어야 했다
내 길을 열고 너를 위한 이정표도 세워야 했다
저 꽃들마저 등 밝히며 길을 이끄는데
아직 길도 못 찾은 채 헤매고 있는
한 사람
마음에 불 밝히는 대신
마음이 그저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