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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Jun 03. 2023

마음으로 오는 푸른 별, 반디지치

반디지치. 아무래도 그 파랑, 그 블루를 편애하는 게 맞기는 하다. 옛 그림을 채색하던 비싼 안료 라피스라줄리의 그 빛깔이 여전히 나를 매혹하는 게 맞기는 하다. 그 파란 별들은, 초록의 비탈에서도 묻히지 않는 제 빛으로 빛나 마침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꽃의 꽃말이 ‘희생’이라고 해서 마음에 갑자기 탱자나무 가지들이 얼킨 듯했다. 꽃말을 설명하는 글에서는 후손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꽃잎이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때로 꽃잎 떨어진 반디지치를 보게 되는 거라고. 실제로 반디지치는 상한 꽃잎을 많이 달고 있다. 


‘희생’이라니. 오랫동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단어를 만난 기분이었다. 크든 작든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들이 있었다. 정말 거대하게는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한 희생이 있었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이들이 있었다. 나 자신을 잘 지탱하며 한 세상 끝까지 살아가는 일도 스스로에 대한 희생이다. 삶은 녹록치 않은 고해의 바다이니 너나없이 어떤 의미로든 희생이 필요하다. 세상은 희생의 수레바퀴로 조금 더 나아지곤 했다.  


반디지치, 구봉도(2019. 5. 12.)


보고 싶은 꽃 보러갔다가 어쩌자고 이렇게 심각해져버렸을까. 또 다른 설명에선 ‘나를 잊지 말아요’가 반디지치의 꽃말이라고도 했다. 심각해진 마음으로 그 글을 읽는 순간 ‘대체 뭘 잊지 말라는 거지’라는 물음이 생겼다. 희생...나를 잊지 말아요...의 사이. 인디언 아라파호족들은 5월을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불렀다. 오래전에 죽은 자들을 기억하는 오월. 잊지 않아야 할 것을 잊지 않는 일 역시 무척이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정작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쓸모없는, 겉치레에나 매달리는 일들도 많다. 정말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도 자꾸 줄어드는 것 같다. 


반디지치가 심각한 꽃이 돼 버렸다. 저 쪼끄맣고 파랑파랑 빛나는 꽃에게 내가 너무 큰 짐을 지운 것 같다. 


반디지치, 태안(2020.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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