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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Jun 03. 2023

흔들리며 흔들리며 선백미꽃

야생화를 만나고 찍는 일은 쉽지 않다. 야생화는 야생에 피는 꽃이니 먼저 야생으로 찾아가야 한다. 그 드넓은 야생에서도 꽃이 피는 곳은 따로 있다. 내 발길 닿는 곳에서 기다려 피어주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보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날부턴가는 정보를 찾아 가는 일도 좀 지쳤다. 그리고 꼭 어떤 꽃을 봐야 한다는 마음도 애써 비웠다. 만나게 되는 꽃을 반가워하며 즐기다가 떠나오자고 생각했다.


백미꽃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꽃들은 누군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세상에 무수한 의미가 있어도 알아차리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드문 것과 같다. 선백미꽃을 만난 오후가 그래서 더 고마운 기억이다. 알고 갔던 게 아니어서, 거기 꽃이 핀다는 걸 알았던 게 아니어서, 정말 우연히 만항재에서 만난 그 꽃이 선백미였다.    


선백미, 만항재(2019. 7. 6.)


흔들리는 꽃을 바라보며 생각해야 하는 건 분명히 내 모습이다. 흔들리는 중에도 꽃의 중심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집중하는 만큼 내 내면의 중심에 닿으려고 해야 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나를 만나는 일이다.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는 선백미는 경쾌한 거울이다. 저 푸르고 작고 어여쁜 거울이 나를 보듯이 너를 잘 봐....라고 속삭인다. 저토록 가벼이 흔들리며 속삭인다. 그 말을 내가 듣는다. 이제 그 말처럼 나를 잘 봐야 한다. 꽃들은 늘 그렇다. 꽃들은 자기를 봐주는 시선을 느끼고 그 시선의 갈망을 알아차린다. 꽃들은 다정하게 혹은 가차없이 조언한다. 너 자신도 못 보면서 잘 보이지 않는 꽃들을 들여다보면 뭐하니. 그렇게 매몰찬 어른 같은 꽃들도 있다. 


인적은 드물었고, 정수리에 떨어지는 태양도 나무들 사이의 살랑이는 바람 덕분에 별로 힘들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내겐 목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그 순간 눈앞에 나타나주는 꽃들과 만날 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꽃들의 이름조차 애써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꽃, 다가오는 꽃들을 경이롭게 만나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와중에도 정말 필요한 건 나를 아는 일이었다. 


햇살은 따스했고 인적은 드물었다. 세상 편한 자세로 꽃과 놀기에 아주 좋은 날이었다. 바람이 끼어들어 꽃과 나 사이를 희롱했다. 고도의 긴장을 유지하며 꽃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에는 바람이 더 많이 찍혔다. 꽃은 흔들흔들 바람에 흔들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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