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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인 Jun 03. 2023

흔들리고 있구나, 병아리난초

앙증맞은 노란 병아리 이름을 얻은 이 앙증맞은 난초는, 앙증맞음과 달리 척박한 조건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더욱이 바위에 붙어 피어난다. 그래서 더 귀엽고 더 대견한 꽃이다. 짹짹 병아리처럼 귀여운 꽃망울들이지만, 사실 병아리를 연상하기는 어렵다. 바위난초라고도 불리는데, 오히려 이 이름이 적절하지 않을까? 


어둑해지는 시간이긴 했어도 아직 해가 지진 않았다. 그래도 북한산 자락 수풀 사이에는 어둠이 젖어 있었다. 이 꼬마꽃망울들은 초점조차 잡히지 않고 후텁지근한 대기에 숨을 참는 순간 땀이 범벅이 됐다. 팔에도 등에도 모기의 공략이 치열했다. 그렇게 만난 이 녀석들!



낮에 비가 거세게 쏟아져서 계곡에 물이 불었다. 세 해째 간 곳인데 그렇게 물이 많은 건 처음이었다. 늘 말라있던 계곡을 밀려 내려오는  물이 미세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병아리난초가 줄곧 흔들렸다. 미세한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리는 꽃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숨을 완전히 정지....하고 셔터를 눌러보지만 흔들려서 초점이 안 맞는 병아리난초가 거기 있다. 훅 숨을 몰아쉬다가 문득 웃음이 난다.      


흔들리고 있구나, 너도

나도 흔들리고 있거든

우리, 살아있는 존재들의 짧은 만남!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반갑다. 흔들리며 가는 생, 흔들리고 방황하고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 마땅한, 살아있는 존재의 길!


병아리난초, 북한산(2021. 6. 30.)


흔들림은 아름다운 생의 증거다. 흔들리지 않는 건 죽음의 장면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흔들린다. 내가 흔들리고 네가 흔들린다. 꽃을 찍으려고 완벽에 가까이 정적인 순간이 될 때 비로소 사람도 들숨과 날숨의 순간에 하염없이 흔들린다는 걸 느낀다. 큰 나무, 큰 꽃을 찍을 때는 잘 모르던 일을 이렇게 쪼끄만 꽃과 만날 때 새삼 생각한다. 병아리 병아리 병아리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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