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라세즈, 부럽지 않아요

by 이아인


처음 ‘망우리 공동묘지’에 올라갔을 때는 봄이었다. 봄이 가고 있던 참이었다. 벚꽃이 분분히 낙화 중인 봄이었다. 가고 있는 봄에, 가고 없는 이들의 묘지에 올라갔다. 벚꽃이 사방팔방으로 떨어져 쌓여있었다. 벚꽃이 하염없이 낙화하고 있었다. 봉분에 꽃잎이 쌓여 더 부드러워보였다. 떠나간 이들의 집이 세상 어여쁜 꽃지붕을 드리우고 있었다. 세상에나, 꽃묘지, 이렇게 아름다운 묘지가 또 있을까? 망우리 묘지는 ‘전설따라 삼천리’의 배경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들어선 묘지는 사시사철의 풍요와 빎을 누리고 있는 천혜의 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묘지는, 그리움과 죄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망우리 공동묘지’라고 불리던 망우리공원은 1933년 조성되었다. 만해 한용운과 소파 방정환,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위창 오세창이 여기 묻혀 있고 유관순 열사의 자취도 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난 유관순은 보름이 지난 후에야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비석도 없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1935년에 이태원을 개발하면서 무연고 묘지들이 망우리로 옮겨졌는데, 표지도 세우지 못했던 유관순 열사의 유해도 무연고 처리됐다. 그 유해들을 모두 화장해 합장하고 위령비를 세웠다. 더는 자취를 찾기 어려워진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만이 그 과정을 어렴풋이 알려준다.


우리 역사의 슬픔도 기억하게 하는 망우 묘역을 코언의 ‘who by fire’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누가 불의 심판을 받을까, 누가 물의 심판을 받을까, 누가 햇빛 속에 있게 되고 누가 어둠 속에 있게 될까….”

그건 부디, 제발, 마땅히 선한 지향으로 살다간 이들이 평온하길 바라는 기원이었다. 부디 이 세상에서 자기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마저 짓밟은 가해자들이 ‘가혹한 시련을, 아주 천천히 썩어가는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탄원이었다. 저세상의 일을 어찌 알겠는가. 그럼에도, 지상에서 온갖 폭력으로 생명을 망가뜨리고 생명을 파괴한 자들이 죽어서까지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는 건 늘 아주 불편하다.


이중섭의 조촐하지만 아름다운 묘지와 박인환의 묘지를 돌아나온다. 처음 왔을 때 그의 묘지에 있는 스마트 안내판에서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을 들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산책로를 걷다보면 ‘목마와 숙녀’가 새겨진 시비도 서 있다.


IMG_5093.JPG 망우 묘역의 이중섭 묘지(2019. 4. 21.)


망우리 묘지들은 산토리니의 집 같았다. 누군가의 등 뒤에 또 누군가가 잠들어 있다. 경계가 모호한 이 안식의 자리들, 쌓인 꽃이 더더욱 경계를 지워주었다. 죽어서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토록 겸손하고 다정한 죽음의 자리라니!

분분한 벚꽃이 묘비명이고 지붕이고 이웃에게 가는 오솔길인 묘지. 꽃은 어디에든 공평하게 지고 공평하게 쌓였다. 죽음의 자리는 평안했다. ‘슬픔을, 근심을 잊는다’라는 말처럼 망우는 이제 피안을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