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지 않고, 대화하는 요령
코로나 시국으로, 꼼짝없이 감금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서울 - 지방 주말부부를 하고 있는 우리는 다행히도(?) 나의 재택근무 덕분에 근 두 달 가까운 시간을 함께 붙어 있을 수 있었다.
진천에 있는 남편 집은, 1.5룸의 작은 집. 게다가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산업역군들의 편리한 주거를 위해 지어진 빌라촌이라, 주변에 편의시설은 없다. 거의 없다가 아니라 아예 없다. 게다가... 차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환경이라 밖에서 안전하게 걷거나 산책할 만한 인도도 없어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은 집에서 5분 거리의 편의점, 단 한 곳 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안 그래도 집에서 꼼짝없이 궁둥이 붙이고 재택근무하는 나는, 거의 정신적 피로도가 폭발 직전이었다. 이런 나를 위해서 (물론 본인을 위해서도), 남편은 항상 퇴근하면 늦은 시간이라도 드라이브를 가자고 한다.
요즘 드라이브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1) 리프레쉬, 2) 나의 운전연습, 3) 남편의 노래방.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의도치 않았지만 하면서 발견한 게 있으니, 드라이브 환경은 참 좋고 자연스러운 '대화'의 환경이었다.
우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다.
많은 글들을 보면, 마주 앉는 것보다 나란히 앉는 것이 훨씬 더 부드러운 대화를 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우선, '대결'구도가 아니고, 서로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또 손을 잡거나 어깨를 만지는 등 스킨십도 자연스러워지고, 시선을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도 없다.
또, 차라는 공간 특성상, 둘 만의 공간이고, 둘의 목소리도, 오묘한 기운도 잘 포착된다.
어울리는 노래까지 나온다면, 더 안성맞춤이다 - 이래서, 차 있는 남자가 여러모로 연애에 유리한 것 같다.
나는 주로, '잔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부탁해야 하는 것들을 드라이브하면서 다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양말 똑바로 잘 벗어 놓기, 화장실 불 끄기, 밥 먹고 같이 식탁 치우기 등...
집안에서 그 일들이 눈 앞에 있을 때 이야기를 하게 되면 (물론, 할 때도 있다), 나도 먼가 감정이 섞이게 되고, 말투도 딱딱하게 나가게 된다. 그런데 드라이브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눈 앞에 벌어진 상황도 없는데 생뚱맞게 말을 꺼내는 것이 나도 머쓱하여, '있잖아...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하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남편은 같은 말이라도 tone & manner에 민감하다. 하긴, 세상에 어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발생 현장(?)에서 하지 않고, 독립된 다른 공간에서 하게 되는 잔소리는, 조금 더 조심스럽고 배려 있는 말투로 하게 된다.
이것 말도고, 다른 중요한 이야기도 드라이브하면서 많이 하게 되는데, 집에 있게 되면 대화를 방해하는 수많은 것들과 - 티브이, 집안일 등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극장점이 있다. 드라이브 중에는 운전하는 나만 똑바로 하면, 우리는 온전히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
나는 연애 초기에 대화하지 못해 안달 난 '대화병'에 걸렸었다. 대화하자, 대화가 필요해, 대화가 부족해 등...
거의 남편은 '대화 포비아'에 걸릴 정도로 힘들어했고, 그럼 난 더더욱 악에 받혀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결론은... 말하지 않아도 그려질 터.
지금에서 깨달을 것은, 대화는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멍석을 깔아놓고 하는 대화는 '언쟁'이나 '억울함 대 성토' 혹은 '니 탓 내 탓' 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당장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데 드라이브 갈 수 없다면, 나는 남편 옆에 앉는다. 보통 벽을 등지고, 벽에 기대어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시도한다. 손 까지 꼭 잡고 어깨에 기대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면, 더 성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