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장님처럼 되기 싫어요!

라고 말하고, 뛰쳐나온 첫 직장...

by 한 로지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

나는 대학원을 고민하다 계획도 없고, 준비도 없고, 시간도 없고, 가장 중요하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부족한 시간이지만,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알만한 대기업 등에 서류를 의미 없이 서류들을 내고, 줄줄이 떨어지고를 반복하다가 순전히 '해외영업'이라는 직무에 끌려 지원한 중견회사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이 회사는 인도네시아에 생산 공장을 두고, 미국 백화점 및 브랜드에 납품하는 의류 벤더 업체였다. 그날따라 왜 멋있는 장면들만 포착되었는지, 여러 샘플 옷들을 벽에 쫙- 걸어놓고, 미팅룸 안에서는 열띤 토론을 하고, 그런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처음 들어보는 회사이지만 열심히 인터뷰를 보고, 합격하여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 회사는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이 있었다. 바로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모두 회사에서 책임져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 꼭대기층 구내식당에서 직접 만들어 주시는 점심, 저녁은 심지어 너무 맛있었다 - 아침은 토스트와 음료 등이었다.


단점은, 회사에서 세끼를 모두 챙겨주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새벽같이 출근해 퇴근 없이 일을 했다. 심지어 내가 입사를 했는데, 그 어느 누구도 일을 가르쳐 줄 여유가 없었고, 나는 방치되었고, 정말 심심해서 자료를 보다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사장님께 들키기까지 하였다. 오더를 받아서 납기를 지켜야 하는 일, 매일매일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고, 급박한 업무들을 처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한, 두 달이 지나고 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들었다.


첫 번째로, '해외영업부서'라는 먼가 모를 멋짐이 이끌렸었는데, 다른 시간 대(정 반대)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특성상 모든 업무는 이메일로 진행이 되었다. 영어로 쏼라쏼라 하며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공항을 누비는 그런 모습과는 아 - 주 거리가 멀었다.


두 번째로는 - 가장 중요했던 것, 우리 팀에서 내가 관찰할 수 있는 대리님, 과장님의 모습은 내가 3년 후, 10년 후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의 리더가 없는 조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당시 팀장님이셨던 과장님께 점심식사 및 면담을 요청했고 - 먼가 '기운'을 눈치채신 과장님은 팀 대리 님과도과 함께 점심식사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나는 아주 당돌(?)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았다.


'과장님, 과장님은 앞으로 머 하고 싶으세요?'


'...? 응..?? 아.. 나는 글쎄. 조그만 부자재 업체를 하고 싶은데 나중에는'


'네.. 과장님, 제가 3년 후, 10년 후에 되고 싶은 모습은 대리님, 과장님과 같은 모습이 아닌 것 같아요. 이제 곧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나가니, 그때까지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이후로는 점심이 어떻게 종료되고, 상황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회사에서는 '아, 또 사람 하나 잘못 뽑았구나' 하고 마무리 하였겠지.


그렇게 한 학기가 채 끝나기 전에 나는 한 직장에 입/퇴사를 마무리 지었고, '취직했다'라고 교수님께 통보하고 나가지 않았던 과목의 학점은 D를 맞으며, 최종 졸업학점에 큰 한방을 먹고 졸업하게 되었다.



가끔 그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다. 내가 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큰 사옥을 지어서 사무실을 옮겼고, 전용 연수원도 마련하는 등 사세가 아주 좋아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좋게 나를 보내주신 과장님, 그리고 팀원 분들의 사진도 커리어 페이지에서 보였다.


'내가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재밌는 상상을 한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기억만 도드라지게 남는 것일까?

2년, 3년 경력을 쌓아가면서, 아마 내가 원했던 '해외영업'의 업무를 조금씩 신나게 해 나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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