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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로지 Jan 05. 2022

아직도 제가 평균 이하라고요...?

우리 아기 머리 크기는 평균 이상인데요? 

[37주 3일]


2주 만에 진행하는 정기검진. 


이번 정기 검진까지 기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해피 뉴이어도 있었고, 나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제 복복이의 예정일까지 십 여일 밖에 남지 않았고, 배에서 느껴지는 태동도 '꿀렁꿀렁' 노는 느낌이 아닌 좁은 방안에 끼여있는 아가가 이리저리 답답해서 꾸물거리는 느낌이랄까. 


기대 99, 걱정 1을 가지고 있는 남편은 매일 퇴근하고 밤 시간이 되면 배에 대고 언제 나오냐고 노래를 하고(실제로 작사 작곡한 노래를 한다 - 음도, 박자도 불명확한, 원작자만 부를 수 있는), 양가 부모님들도 통화할 때마다 기대하시는 목소리를 감추실 수 없다. 


지난번 정기검진 때, 운동 안 하고 출산준비 부족한 불량(?) 엄마라고 혼났기 때문에 (그간 방탕한 나의 생활을 보면 사실이었기 때문에 유구무언...), 지난 2주간은 주치의 선생님이 '운동 열심히 했어요?' '네! 매일 한 시간 정도씩 꼭 걷고 운동했어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리라 마음먹고, 매일 옷을 단단히 싸매 입고 나갔다. 


오늘은 첫 태동검사 및 내진이 있는 날. 둘 다 처음 해 보는 검사라서 아침부터 조금 기대도 되는지 들뜬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여보, 오늘 병원에 가면 무슨 얘기를 해 주실 것 같아! 그렇지?' 


머... 내가 예상한 얘기는 대략 이렇다. 

'운동 열심히 하셨네요! 애기가 나올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네요. 좀 큰 편이라 조금 일찍 분만하면 좋겠네요. 이렇게 하면 곧 애기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등등, 나중에 생각하니 혼자 행복 회로 열심히 돌림...


첫 태동검사는 15분 정도 진행되었다. 분명히 병원에 오는 차 안에서는 위에서도 꿀렁꿀렁 밑에서도 콕콕 열심히 놀고 있던 것 같은데, 태동 검사 시작하니 잠잠하다. 태동이 느껴질 때 한 번씩 누르라고 하는 버튼은 누를 준비만 계속하고, 한 10분 정도는 가만히 누워 있었던 듯하다. 


'선생님, 이 배에 붙인 벨트에서 진동이 느껴지는데,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아니면 태동이에요?'

    '네, 엄마 벨트에 진동 기능은 없어요. 태동이 더 잘 느껴지게 하는 거니까 느껴지면 버튼 누르시면 되어요.' 

'아, 감사합니다!' 


첫 태동검사를 하는 산모 엄마는 무진동 벨트를 진동 벨트로 착각했다. 


오늘 병원 대기는 역대급으로 길었다. 가장 처음 병원 진료실 대기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선생님이 수술 및 곧이어 분만까지 들어가시는 바람에 소변검사, 태동검사를 먼저 마치고서도 한 시간 넘게 하염없이 기다린 듯하다. 그렇지만, 내가 나중에 병원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똑같은 상황이 나로 인해 생길 것을 알고 있기에 남편과 무료하지만 큰 불평 없이 소파에서 대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수술을 했던 남편은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너무 힘들어했다. 나는 만삭의 임산부라서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긴 마찬가지... 그렇게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기도 싫을 때, 저 멀리서 너무 반갑고도, 어쩌면 위풍당당(?) 하게 까지 보이는 선생님이 성큼성큼 걸어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조금 지치긴 했지만, 열심히 행복 회로를 돌리고 온 날이기 때문에 기분 좋게 인사를 드리고 검사를 진행하고 초음파로 복복이가 얼마나 컸는지도 보았다. 


첫 내진은 조금 아팠다 - 분명 나중에 아플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근데 내진을 하면서 아직도 산모의 운동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몸이 출산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 평균적인 준비상태에도 못 미친다고... 자궁 입구도 좀 더 열려야 하고 부드러워져야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흑흑... 나는 아주 개미만한 목소리로...'그래도... 하루 한 시간씩 운동도 하고 그랬는데요...ㅠㅠ'라고 항변(?) 해 본다. 


나와 다르게 복복이는 이미 나올 준비를 진작에 마쳤다. 머리 크기는 항상 주수보다 많이 앞서갔고, 아빠 엄마 등치가 크기 때문에, 예상 몸무게도 이미 3.2kg.

2주 전 적~어도 적어도 1시간 이상씩 걷기 숙제가 1시간 30분으로 늘었다. 그러면서 '3시간씩 운동하고 오는 산모도 있어요'라고 다시 한번 나를 세게 독려하신다. 


집에 돌아오는 길부터 나는 잔뜩 풀이 죽었다. 남편도 내 기운을 알아차리고 옆에서 평소에는 안 해주는 칭찬도 해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 주는데, 지금 이 순간은 기운이 나지 않는다. 


사실, 지금은 만삭의 기쁨 - 곧 아기를 만나는 기다림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평소와 아주 많이 다른 몸, 여기저기 아프고 만성 소화불량은 이제 일상이고, 기본적인 생활이 점점 어려워질 정도로 배는 불편하다. 이미 임신 전 보다 +15kg 정도 불어버린 몸과 얼굴은 못생겼고, 점점 이 기다림이 언제 끝날까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뱃속에 있을 때가 가장 좋을 때다 - 라는 조언은 나중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집에 와서 남편과 점심을 먹고, 조금 누워서 피곤한 몸도 회복하고 (잠시 낮잠) 노트북과 읽을 책 한 권을 백팩에 챙겨 메고,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리는 거리게 카페를 왕복하기로 하고 나왔다. 그래도 집에만 있을 때 보다 춥고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지만, 걷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기분이 좀 더 나아진다. 


이 기운으로, 다시 1주일 정신 차리고 지난 2주보다 더 부지런한 시간들을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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