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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는 _________ 교사입니다.

3-1. 나는 기간제 교사입니다. [1편]

by 로지


코로나?
세상이 또 나를 좌절시켰다.
후…3번의 탈락을 한 나를 이렇게나 도와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임용에 1년씩 투자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26살이 되었고, 해가 바뀌자 27살이 되었다.
27살의 백수.
이것이 현실 속 내 위치였다.
내가 꿈꿨던 것과는 많이 다른 현실.

28살에는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결혼까지 할 거라는 내 인생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이참에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가진 것은 “중등교원자격증 2급”이었고, 그렇게 기간제 원서를 접수했다.


여기저기에 원서를 넣고, 아무 곳이나 되었으면 하고 빌었다.
그렇게 운이 좋게도 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큰 경력도 없는 나에게 기회를 주다니 역시 아직 세상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면접을 보러 향했다.

면접실에 들어가서 마주한 교장, 교감, 그리고 교무부장 선생님.
탈락은 이제 이골이 났으니 될 대로 되라지 생각하며 편하게 면접을 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화가 한 통 왔다.

“선생님, 조심히 가고 계시죠? 합격 축하드립니다.”

네? 면접이 끝난 지 몇 분 되지도 않았고, 내가 마지막 면접자라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성적이 유독 나빴던 과목에 대해서도 말씀하셨기에 불안했는데…

“감사합니다! 언제부터 출근하면 될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와 나는 조금 가벼운 마음이었다.

백수 탈출이다!

아빠에게도 마치 임용에 합격한 것처럼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으스댔다.
그렇게 나는 기간제 교사가 되었다.


1년 동안 기간제 교사로 지내본 것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다.
드디어 나도 직장인이라니 너무 행복하기도 했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간접적으로나마 기간제의 일상을 엿보고자 드라마 <블랙독>을 시청했다.
서현진 배우가 주인공이었고, 모든 출연진이 연기를 참 잘해 몰입해서 봤던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기간제의 삶이 꽤나 힘들게 묘사되었다.
그래도 나는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무경력의 교사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담임교사를 맡아볼 수 있는 행운이 나에게 주어졌다.

맡아본 업무가 없기에 업무도 비교적 쉬운 것을 배정해 주셨고, 담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신규 선생님이 담임을 맡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해 주셨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올해 여러분과 1년 동안 함께 지낼 이소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담임을 맡게 되었고, 과목은 영어입니다. 잘 지내봐요."


교직에 첫 발을 내디뎠던 나의 첫 대사이다.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집에서 끊임없이 되뇌었던 말이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첫인사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역시 신은 있었다.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

반 아이들은 너무 예쁜 아이들이었고, 어리바리한 담임 선생님을 믿고 따라주는 아이들이었다.

첫 달은 정말 너무도 행복해서 '이런 게 선생님의 삶인가?'하고 착각해 버렸다.


그리고 두 번째 달이 되자 서서히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중간고사 기간이 도래한 것..

나는 난생처음 시험 문제라는 것을 내야만 했다.

심지어 한 학년에 나누어 들어가는 베테랑 동 교과 선생님과 나눠서 문제를 내며 자괴감을 느꼈다.


선생님께서는 하루 만에 시험문제를 다 내버리고, 나에게 시험지 가안을 넘겨주셨다.

나는 이제야 겨우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이번 주까지 완성하자고 하셨다.

정말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그날부터 밤을 새워가며 문제를 내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는 그저 응원을 해주셨을 뿐, 처음은 쉽지 않다고 격려해 주셨다.

하지만 열심히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동 교과 선생님과 검토를 하는 과정에서 내 문제를 수정해야 했다.

난이도를 조절해서 문제를 내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보였던 것이다.


그날부터 다시 밤을 새워가며 문제를 수정했다.

퇴근하면 집에 틀어박혀 시험 문제를 몇 번이고 읽었고, 수정했다.

스트레스로 밥은 늘 인스턴트로 빠르게 해치웠고, 집을 청소할 시간이 없어 집은 쓰레기장이 되었다.

그렇게 중간시험 문제 출제를 끝냈다.


뭐든 처음이 어려웠던지 그때 이후로는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크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후로는 2-3시간 정도 집중하면 시험문제를 모두 출제할 수 있었다.

물론 편집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나름 잘 적응하려고 발버둥을 쳤던 것 같다.

그렇게 잘 적응할 때 즈음 또 다른 시련이 닥쳐왔다.


"선생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저 자퇴하려고요."


항상 듬직했던 반장인 학생이 나에게 자퇴를 하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해 왔다.

이제야 한 고비를 넘긴 신규 교사에게 자퇴 신청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혹시 내가 부족해서일까? 내가 무엇을 더 잘해줬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과에서 이과의 꿈을 꾸는 아이기에 진로 변경을 위해 자퇴하겠다는 아이를 붙잡을 수 없었다.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이니 많은 고민 끝에 결정했을 것이고, 잘 해낼 것이라고 응원했다.

그렇게 제자를 처음으로 떠나보냈다.



<작가의 말>

아끼는 누군가와 멀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저 인연이 다한 것이지요.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참 내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지나간 인연에 지나치게 미련을 가지는 것도, 또 후회를 남길 필요도 없습니다.

헤어짐이 있으면 또 다른 만남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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