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나는 기간제 교사입니다. [2편]
그렇게 처음으로 제자를 내 손으로 떠나보내고, 한동안은 정신이 멍해졌다. 괜스레 눈물이 고이기도 했고, 또다시 교사로서 나의 자질에 대해 의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수업들과 업무를 하다 보니 어느새 1학기가 끝나있었다.
방학은 보충수업이 한창이었고, 더운 여름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고 수업을 했다. 방학이지만 틈틈이 아이들과의 상담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항상 나의 목표는 반 아이들과 2번 이상의 상담을 하는 것이다. 아니.. 아이들과 2번 이상의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한 층은 정든 아이들과 수업도 하고, 나름의 속이야기도 하곤 했다. 정말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아이들과 있는 시간만큼은 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게 교사에 대한 꿈이 내 속에서 다시 꿈틀거렸다.
그렇게 더웠던 여름 방학도 끝나고, 2학기가 되었다. 수많은 수업들을 해치우고, 아이들과도 정말 많이 친해졌다. 푸르른 나뭇잎은 붉게 물들었고, 어느새 더웠던 날씨는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수업을 끝내고, 자습실 한편에서 아이들의 질문을 받아주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저희 학교 선생님 아니세요? 다른 학교 가시나요?
놀랍게도 저 질문을 한 아이는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고,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머뭇거렸다.
먼저 우리 반 학생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선생님 어디 안 가지! 너네 두고 어딜 가겠어!
알고 보니, 한 선생님께서 실수로 내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내 입장에서는 꽤나 불쾌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기간제 교사이니 어차피 다른 학교로 갈 것이라는 그 말을 우리 반 아이를 통해서 듣는 그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 대답에 안도한 듯한 우리 반 아이는 다행이라며 방긋 웃고는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이 순간이 지나고 든 생각은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는 꼭 정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퇴근 후, 그동안 펼쳐보지 못했던 임용 서적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매일 퇴근하면, 밥을 먹고, 잠자기 직전까지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출근을 위해 쓰러지듯 잠들고,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상담을 하고, 퇴근했다.
이런 생활을 반복했던 것 같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임용시험 원서접수 날이 되었다.
이번엔 어느 지역으로 써야 할지, 그리고 공립만 지원하는 게 맞을지, 아니면 사립을 지원할지 등 너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렇게 망설이며 고민을 하다가 원서 접수 마감일이 되었다.
나는 평소처럼 출근을 했고, 원서 접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교무실에서 급한 대로 원서를 접수했다.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하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쫓기듯이 원서접수를 했고, 사립 중 내 마음이 끌리는 곳으로 지원을 했다.
어떤 재단인지도 모르고, 몇 명을 뽑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그저 재단 이름이 끌려서 원서를 접수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정말 경솔한 판단이었다.
알고 보니 영어는 1명만 뽑는 곳이었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모님께도 일단은 원서 접수를 했다고 알렸고, 사립으로 우선 지원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런 나의 전화에 그저 담담하게 알았다고, 열심히 해보라는 응원만 해주셨다.
이제는 다시 현실에 집중해야 할 때가 왔다.
원서접수를 하고 나서도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수업과 업무를 하고, 집에서는 공부를 했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11월이 되었다.
수능 다음 주 정도가 임용시험날이기 때문에 나는 11월이 됨과 동시에 긴장했다.
이제 정말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구나 하는 압박감이 생겼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와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교실로 향했다.
웬일인지 한 녀석이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데리고 교실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고3이 되기 직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보다 생각하며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음... 평소보다는 매우 가벼운 이야기였다.
마치 '오늘 저녁에 무얼 먹을까요?'와도 같은 이야기였달까.
고민 상담이 되기에는 너무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교실로 향했다.
선생님~ 생일 축하드려요!
내가 아이들과 나눴던 작은 마음들이 모였나 보다.
나의 작은 마음도 소중하게 간직해 준 아이들이 생일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빼곡히 채운 교실 칠판과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적은 엽서, 그리고 롤링페이퍼까지..
스승의 날에 이어 두 번째였다.
스승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누구보다 큰 축하를 전했다.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눈물을 흘렸다.
같은 층을 쓰고 계셨던 선생님들께서도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넸다.
임용 압박감과 내 고민들이 무색해질 만큼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친구의 생일을 챙기는 것이 아닌 담임교사의 생일을 이렇게까지 축하해 준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애정이 마음 한편에 깊숙이 남았다.
퇴근을 하고 나서도 내 마음은 풍요로웠다.
나를 향한 축하와 응원을 추진력 삼아 임용 시험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대망의 임용시험날이 되었다.
나는 임용 시험장으로 들어갔고, 부모님과 외삼촌은 나를 배웅해 주셨다.
그렇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고, 임용 시험이 끝났다.
"딸~ 고생했어. 어땠어?"
"엄마! 나 그냥 응시에 의의를 두려고!"
여전히 해맑은 나는 응시에 뜻을 두겠다며 대답했고,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께서는 내 말을 듣고 소리 내어 크게 웃으셨다.
오늘도 한 명에게 웃음을 주었으니 되었다.
기간제를 하면서 노력했던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부모님께서는 고생했다는 말과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렇게 학교도 방학을 했고, 방학 보충수업 전까지는 집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역시 집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엄마가 해주는 따뜻하고 맛있는 집밥을 챙겨 먹으며, 그동안 갖지 못한 여유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설거지를 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딸, 아직 1차 발표 멀었나?
큰 기대를 안 해서인지 1차 합격자 발표날도 잊고 있었다.
우연히도 엄마가 물어본 그날이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엄마, 큰 기대는 하지 마. 일단 들어가는 볼게."
그렇게 1차 합격자 조회를 위해 교육청 사이트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