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직 꿈을 꾸는 어른
그 노량진에 오다니..
뉴스에서만 보던 노량진에 내가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컵밥의 거리. 이제 그 거리의 한편을 채우는 나.
아침은 스터디원과의 스터디로 일어났다.
어제 외운 단어들을 다시 복기한 후, 시험을 진행했다.
그렇게 조금은 힘겨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버스와 지하철 안에는 미처 풀리지 않은 피로감이 가득한 직장인들이 하품을 하며 출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피곤함 조차 부러웠다.
한 손에는 구겨진 단어장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품이 새어 나오는 입을 가렸다.
그렇게 학원으로 향했고, 학원에서 수업 전 모의고사가 시작되었다.
정신없이 문제들을 읽고, 열심히 풀었다.
때로는 운이 좋게도 잘 볼 때도 있었지만 늘 나를 조여 오는 압박감은 떨칠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또 다른 스터디를 진행했고,
그렇게 매일매일 할 것에 치여 허우적거렸다.
그럼에도 좋은 스터디원들을 만나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그렇게 의지를 다지며 공부를 이어나갔다.
서울에서 일하는 오빠는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는지 동생이 웃음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지치는 여름날에는 시원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맨날 같은 신발을 신는 동생을 보며, 운동화를 사주기도 했다.
또, 비싼 인강비에 망설일 때에는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집중하라며 인강비를 선뜻 결재해주기도 했다.
오빠와 나는 밥을 먹을 때면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다.
"조금만 힘내라. 나는 의사 되고, 너는 교사 되면 얼마나 좋겠냐. 그럼 더 행복하게 살 여건을 만들 수 있겠지."
그 말에 나는 교사가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가족들도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고, 나도 번듯한 직장인이 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잠이 많은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같은 시간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다시 공부하고를 반복했다.
이따금씩 고3 때 이렇게 했으면 지금 내 삶이 더 나아졌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이른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고, 나도 곧 그렇게 되겠노라 다짐하기도 했다.
어느덧 1년이 지나갔다.
어떻게 1년을 보냈는지... 정말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다시 임용 시험날이 되었다.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나와 그런 나를 다시 한번 배웅해 주시는 부모님.
내가 공부한 모든 것을 다 적어내겠노라 다짐하며, 펜 끝을 열심히 굴렸다.
그렇게 1년 동안 준비했던 시험이 끝났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동안 마음 편히 쉬지 못했으니 잠도 실컷 자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그리고 1차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까지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왠지 가만히 있는 것은 불안했고, 2차 준비를 하면서 혼자 1차 합격자가 된 듯이 최면을 걸어보기도 했다.
2차 수업실연과 면접 스터디를 진행했다.
진짜 면접장에 들어간 것처럼 답안을 구조화시키고, 내뱉는 연습을 했다.
자기 전에는 면접 질문을 생각하며, 마치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모두가 출근하고 나만 남은 집에서는 나 혼자만의 열정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아무도 없지만 마치 누군가 내 수업을 듣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판서를 하며 강의를 했다.
내 수업을 녹화하고, 스스로 피드백해 보는 일은 매일같이 있었다.
왠지 수업을 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수업을 보는 것이 더 곤욕스러웠다.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나의 시선과 몸짓을 마주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시험이 끝나고 2차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고, 드디어 1차 시험의 결과날이 다가왔다.
‘1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없습니다.’
나는 또 실패했다.
1점.. 단 1점이 모자랐다.
고민하다가 바꿔 쓴 문제를 제대로 적어냈더라면 합격했을 그 단 1점.
처음으로 탈락하고 눈물이 났다.
마치 나는 교사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그 1점이 비웃고 조롱하는 느낌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떨어지는데 다시 한번 교사로서 나의 자격을 의심했다.
잠깐잠깐 강사 일을 하면서 느낀 나는 교사를 하고 싶은 사람인데 결과는 실패였다.
나의 가능성이나 적성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불합격"
이 한 단어로 나는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또 불합격이었다.
이제는 교사를 포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합격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문득 대학시절 접어뒀던 꿈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영어를 쓸 수 있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항공사 취업을 고민했다.
그렇게 항공사 지상직으로 일할 때 필요한 자격증들을 취득하고, 영어 면접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열심히 하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