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방황과 절망 사이
휴학 한 번도 없이 칼졸업을 하고,
임용 시험에도 한 번 떨어진 상태로 그렇게 대학 졸업 무직자로 세상에 나왔다.
‘아.. 이게 취준생인가? 아니다.. 백수인가..?’
일단은 준비하던 임용을 마저 준비해 보기로 했다.
영어는 좋아하니까 조금 열심히 하다 보면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지 나는 매일같이 지치기만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일도 없었다.
그냥 뒤늦은 사춘기가 온 것이다.
남들 다 오는 사춘기가 왜 나는 이제 온 것인지..
꿈 사춘기가 참 늦게도 왔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은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몸을 이끌고 독서실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할 때면, 항상 준비가 더 길었다.
플래너에 멋들어지게 내 계획을 하루가 36시간은 되는 것처럼 빼곡히 작성해 두었다.
계획이 완성되고, 책을 펼치고, 드디어 공부를 시작한다.
아니.. 시작하려고 했다. 뱃속의 천둥번개가 들리기 전까지는.
공부만 시작하면 뱃속에서는 마치 10일은 굶은 사람처럼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소리를 핑계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 크게 길지 않았을 때,
나는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혹시 교사가 안 맞으면 어떡하지? 내가 경험한 게 전부가 아닐 텐데..’
공부에 집중했으면 들지 않았을 잡념들이 나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렇게 시험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또 다른 꿈을 찾는 나의 어설픈 노력은 계속되었다.
시간은 금과도 같다는데 내가 수많은 금덩이들을 공중에 내던졌을 때쯤에 다시 임용시험 원서를 접수하는 기간이 되었다.
일단 원서는 접수했다. 나에게는 원서를 접수할 수 있는 돈과 잔뜩 멋 내고 찍은 증명사진이 있었기에.
그렇게 이제는 진짜 공부할 때가 되었고, 집중을 해보려던 찰나였다.
“어디야? 빨리 와야 할 것 같아. 아버님 돌아가실 것 같아..”
병원에서 근무하시던 엄마의 전화였다.
아빠와 오빠와 함께 갈비탕을 한입 먹으려던 그 순간, 우리는 숟가락을 내려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릴 적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할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이 왔다.
참으로 철없는 나를 예뻐해 주는 할아버지였기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하필 왜 내가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전에 돌아가셨는지.
이 와중에 왜 내 생일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의 연락에 아무렇지 않게 답하며 슬픔을 눌러야 했는지.
할아버지를 보내드릴 때에도 왜 그깟 시험을 앞두고 있어 마음껏 슬퍼할 수 없는지.
소중한 사람을 처음으로 떠나보내는 순간이 하필 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시험을 앞두고였고,
그렇게 나는 또다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기 싫었고, 정말 마지막으로 그리고 제대로 공부하고자 노량진으로 향했다.
<작가의 말>
꿈을 꾼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하지만 꿈을 꾸는 것이 사치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나의 모든 상황들이 '넌 안돼. 포기해!'라고 소리 지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늘 기회의 순간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혹여나 잡았다고 한들 한 줌의 모래처럼 어느새 사라지는 것이 꿈인 것 같다.
손으로는 움켜쥐기 힘든 것이 모래이지만, 손 틈으로 빠져나가면 다시 쥐면 그만이다.
꿈은 때로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좌절시키지만
성장시키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실패하지만 다시 성공하기도 한다.
항상 꿈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꿈을 찾은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