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는 행복한 교사입니다.
사실.. 하는 일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간제 교사에서 정교사가 된 것이 전부였다.
역시나 나는 또 담임을 맡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좀 더 마음껏 잘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에는 경험도 없었기에 그저 내 마음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신입생들을 맡게 되었다.
담임도 학생들도 모두 신입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우당탕탕 학교 적응기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저희 사물함 어디에 있어요?"
"음.. 얘들아... 나도 잘 모르겠다ㅋㅋㅋㅋㅋㅋ 학생회 선배들한테 물어보자."
이렇게 학생들이 오히려 내가 아는 것보다 학교의 사정에 더 익숙했고,
매일 조회시간과 종례시간에 내가 할 일은 교무실과 교실을 번갈아가며 뛰어다니는 일이었다.
아직도 이렇게 어리숙한 담임 선생님이라니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나에게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오히려 선생님 참 애쓰신다며 고마워했다.
역시 모든 사람에게는 감당이 가능할 정도의 시련만 주는 것이 맞았다.
아이들과 외부 활동을 나갈 때면 교내에서는 말썽을 부리기도 했던 아이들도 어느새 교사인 나보다 더 의젓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고, 학부모님과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학교에 적응하면서 보내는 1년이 참으로 값졌다.
교사이기에 누릴 수 있는 감사한 즐거움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학교에도 적응을 했고, 수업과 학급을 운영하는 것도 적응했다.
아이들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잘 이루어졌으며,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하는 동료 선생님들과도 즐겁게 지냈다.
참 평화로운 일상이었지만 어쩐지 나를 성장시키고 싶었다.
이대로 머무르기에는 아직 교직 생활이 더 많이 남았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다짐하고, 원서를 넣고 나의 발전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면접은 꽤 떨렸지만 설레는 감정마저 들었다.
그렇게 방학을 앞둔 나는 면접을 보았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렸다.
동료 선생님들께서는 나의 도전을 응원해 주셨다.
시간이 흐르고, 방학이 되자 대학원 합격 발표일이 되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등록 기간은 ~일까지입니다."
임용 합격 이후 또 한 번의 짜릿한 순간이었다.
정말 안 풀릴 때는 그렇게도 안 풀리더니 이제는 하고자 하는 일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그렇게 학기 중에는 교사로 방학중에는 학생으로 시간을 보냈다.
안 그래도 짧은 여름 방학을 대학원 수업으로 보내고 나니 쉴 틈이 없었다.
누군가는 '그래도 방학이 있는 게 어디야. 직장인은 방학 같은 것도 없어! 연차도 마음대로 못쓴다고!'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학기 중 학생들 상담, 학부모님들과의 상담, 수업 준비, 행정 업무, 회의, 연수 등을 하고 나면 나를 모두 다 소진해 버린 기분이 들었다.
담임을 맡고 있으니 내 일이 급하다고 학교를 비울 수 없었고, 아이들이 담임이 없이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불가피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학교에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몸이 좋지 않았지만 일단 출근했고, 수업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컨디션인 경우에만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퇴를 했다.
나를 위해 일을 한다기보다는 내 수업과 당직 근무를 대신 들어가야 할 선생님들, 그리고 담임교사를 더 의지하는 담임반 아이들을 생각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한 학기를 하얗게 불태우고 나면 약간의 쉼은 필요한데 공부를 하며 쉬지 못하니 힘들었다.
더 이상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니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마음 깊은 한 구석에 남아있던 에너지를 드디어 꺼내어 사용할 때가 되었다.
애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애정을 더 듬뿍 쏟아주었고, 큰일이 일어날 때에도 유연하게 넘겨보고자 했다.
상담을 할 때면 슬픔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가 더 많았다.
지친 나를 위한 선물이라도 하듯이 남은 삶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힘든 시간이 눈 녹듯 사라졌고, 행복한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결혼을 약속했다.
양가 부모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조금은 이른 상견례를 했다.
비슷한 가족 분위기에 상견례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고, 결혼 준비는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장거리 커플이라 준비가 쉽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했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