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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암환자라고요?

4-3. 제가 암환자 라구요?

by 로지

"이거 다 제거예요..? 이렇게 많이 뽑나요?"

"네...ㅎㅎ 조금 많죠? 조금 따가울 수 있어요."

"네.. 저기 혹시 이런 일이 처음이라 신기해서 그런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찍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조금 남아 대기표를 뽑고, 차를 마시기로 했다.

빵과 커피를 마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환자였지만 어쩐지 오빠와 예비 남편의 표정이 더 좋지 않았다.

적어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늘 밝은 역할을 맡은 내가 우울해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밝은 표정으로 그리고 평소와 같은 장난으로 오빠와 예비 남편을 위로했다.


"이소정 님~들어오세요"


그렇게 내 차례가 되었고, 오빠와 예비 남편은 가족이기에 함께 결과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안녕하세요!"

"네~ 앉으세요. 음.. 지난번에 미세침 검사와 유전자 변이 검사를 진행했는데요. 암으로 나왔어요."

"아..."

"저희는 검사까지만 진행해서 여성외과 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하루아침에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산정특례까지 등록된 것을 병원 영수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 그제야 실감이 되었다.

결과를 예상했기에 나는 덤덤했지만 가족들의 슬픔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암 환자가 되다니..

선생님께서 나를 암환자로 만든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왠지 원망하게 되었다.

그 한 마디만 아니었다면 마치 병에 걸렸어도 나는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여성외과에서의 검사 날짜를 잡고, 다시 병원에 들르기로 했다.

조직 검사 결과는 함께 들었지만 나는 이제 혼자 병원으로 향해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와 일상에서의 시간을 다시 보내고 있었다.

나와 2년을 함께한 아이들 눈에는 지친 내가 보였는지 휴지에 장난스럽게 '사직서'라는 단어를 적어 내 모니터에 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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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내 마음에도 순간순간의 기쁨은 있었다.

그때 너희는 몰랐겠지.. 나 홀로 너희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는..?

병원 검사날이 되었고, 학교에서 현장학습 가는 일정과 겹쳐 사정을 말하고는 모두 현장 학습을 떠날 때 병원으로 향했다.

현장학습은 못 갔지만 병가를 쓰고 쉬기에는 업무가 많아 학교로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면서 하루만 병가를 내고 검사를 진행했다.

피검사, CT, 심전도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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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사를 진행할 때에는 정말 내 몸에 있는 피를 모조리 다 뽑는 기분이었다.


"이거 다 제거예요..? 이렇게 많이 뽑나요?"

"네...ㅎㅎ 조금 많죠? 조금 따가울 수 있어요."

"네.. 저기 혹시 이런 일이 처음이라 신기해서 그런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찍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기술이 좋으셔서 그런지 10통을 뽑으면서도 크게 아프지 않았다.

이제는 피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CT를 찍을 차례이다.

혹시 몰라서 아침을 안 먹고 갔는데 덕분에 CT도 당일에 찍을 수 있었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검사를 위해 침대에 올라가서 누웠다.

생각보다 내가 누운 곳은 딱딱했고, 차가웠으며, CT 촬영실의 공기는 더욱 서늘했다.

그래도 검사를 진행해 주시는 선생님들만큼은 따뜻했고, 검사를 진행하는 내내 내가 불안하고 무섭지 않도록 신경 써주셨다.


결혼을 앞두고 암에 걸린 내가 너무 죄인인 것 같고, 이대로 결혼을 없던 일로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동안 힘들다고 말한 거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넘겨서 미안하다며,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지나치게 힘들어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예비 남편도 모두 눈물을 보였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장난만 치던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믿을 수 없었으며, 믿고 싶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나 빼고 다 눈물바다였던 것 같다.

평소에 감정의 폭이 크지 않은 예비 남편이 울었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정말 큰일이구나 싶었다.


다행히도 어머님과 아버님께서는 "소정이는 이미 우리 가족이야. 지금 당장은 조금 힘들겠지만 다 괜찮을 거야."라며 오히려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다. 물론 남편도 "이런 걸로 결혼이 없던 일이 될 리가 있어?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며 내 건강만 신경 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수술을 위해 나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생각해 보았고, 결국 가족들의 바람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곧바로 학교에도 이 사실을 알렸고, 바쁜 일정을 더 소화하기는 무리이기에 얼마 남지 않은 1학기만 마치고 휴직을 내겠다고 이야기했다.

처음 피검사를 진행한 건 4월 말, 더 큰 병원을 가게 된 것은 5월, 그리고 대학병원에서 피검사를 진행하고 진단명을 받은 것은 6월...

새 학기 개학을 한 3월,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4월, 병원을 태어난 이래로 가장 많이 갔던 5월과 6월...

그렇게 가장 정신없는 1학기를 보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암을 진단받았고, 미처 못 나간 진도를 다 나가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기 시작했다.

'아... 암을 진단받고도 내가 계속 일을 해야만 하는구나. 참.. 삶이 힘들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학교에서는 특히 아이들 앞에서는 나를 철저히 숨겨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무거웠다.

학교에 출근하는 길이 지옥이었고, 출근해서는 아프다는 것을 티 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래도 일단은 무사히 1학기를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결혼도 다가왔고, 1학기의 끝인 방학식도 다가왔다.

정든 아이들과 학교와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시원했던 날씨는 어느덧 무더워졌고, 길게만 느껴졌던 1학기는 어느새 끝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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