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쉼"이 필요한 교사
수술 날짜도 정해지고, 학기를 바쁘게 마무리했다.
생활기록부 입력도 서둘러 마쳤다.
사실 암을 진단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럼 이제 쉴 수 있네? 나 이제 쉴 수 있다.’였다.
짧았던 교직 생활 내내 나에게는 쉼이 부족했다.
기간제 교사를 할 때에는 ‘정교사를 위한 정진’
정교사가 되었을 때에는 ‘학생들을 위한 헌신’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데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이 없었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밀린 업무를 해내야 했고, 정해진 날들에는 밤늦게까지 보충 수업과 상담을 진행했다.
방학 때는 학기 중에 할 시간이 없는 다음 학기 수업 준비를 하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만 뒤쳐지게 할 수 없어 연수들을 찾아다녔다. 스스로 나태해진 것만 같아 대학원을 다니며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도 내게 그놈의 노력을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를 몰아붙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 ‘나’였다.
쉼이 없었던 나는 앞만 보고 달렸고, 그 결과 병을 핑계 삼아 쉼에 도착했다.
수술을 위해 입원 수속을 마쳤다.
어제까지는 선생님이었는데,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었다. 병원복으로 갈아입으니 실감이 되었다.
암병동에 입원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이 있었다.
옆 병동이 소아병동이라 어린아이들이 환자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것이 마음 아팠다.
‘왜 젊은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했던 잠깐은 어린 환자들을 본 순간 그저 투정에 지나지 않았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나와 같은 병명으로 입원해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한 병실에 들어와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구나,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놀랐을 예비 남편에게 괜스레 장난도 치고,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읽지 못했던 책도 읽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쉬었다.
다음날 간호사 선생님께서 수술 시간을 알려주러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수술을 위한 수액을 달아주시고, 수술 시간을 말씀해 주셨다.
생각보다 빠르게 수술 시간이 잡혔다.
조금 기다리니 수술실로 이동시켜 주실 선생님께서 오셨다.
병실 침대가 아닌 수술실로 이동할 침대에 누웠다.
병원 천장을 바라보며 남편과 엄마와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막상 당일이 되니 긴장은 되지 않았고, 그저 신기한 경험을 하는 듯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회복실에 도착했다.
간호사 선생님과 마취과 선생님께서 오셔서 간단한 설명과 상태 확인을 해주셨다.
“우와, 이마에 붙이는 이거 뭔가요?”
“네? 아~ 수술 중 환자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장치예요.”
“아~신기하네요.”
“네. 이렇게 해맑은 환자분 처음이네요.”
간호사 선생님과의 대화도 마치고, 마취과 의사 선생님께도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한 뒤 수술실로 이동했다.
모두 친절하셔서 그런지 수술이 아니라 어떤 체험을 하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술실에 도착하니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서 와요. 어제 잠은 잘 잤고~? 긴장되지는 않아요?”
“교수님, 안녕하세요. 네, 잘 쉬었어요. 긴장되지는 않고, 좀 신기해요.”
“왜, 영화같어?“
“네. 진짜 드라마에서 보던 그대로네요!”
“허허허. 좀 쉬고 있어요. 마취과 선생님 오시면 마취하고, 수술 잘해줄게요.”
아빠와 비슷한 나이이실 교수님께서는 마치 딸 대하듯 다정한 말들을 해주셨다.
교수님과 의료진들을 믿고 깊은 잠에 들었다.
“환자분, 회복실로 이동할 겁니다. 많이 졸리시겠지만 자면 안 돼요.”
“네... “
어느새 끝난 수술과 정신이 몽롱한 나.
회복실 천장에 적혀있는 글귀를 반복해서 읽으며 잠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병실로 이동하는데, 2인실 자리가 생겨 넓고 쾌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보호자는 1명만 동반 가능이라 남편이 엄마, 아빠, 오빠와 번걸아가면서 들어와 인사를 했다.
눈물을 글썽이던 엄마, 괜히 장난치던 아빠, 그리고 동생이 조금은 안쓰러웠던 오빠, 그리고 너무 멀쩡한 나.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남편과 둘이 남았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는 중, 교수님께서 와주셨다.
“어이구, 벌써 영화 보는 거 보니까 멀쩡하네!”
“하하하. 교수님께서 수술을 너무 잘해주셔서 멀쩡해요!”
“하하. 그래요. 수술은 잘 됐고, 푹 쉬면서 경과 좀 볼게요.”
“감사합니다.”
수술을 마친 뒤에는 체력이 더 떨어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날아갈 듯 홀가분했다.
쉼이 필요했던 교사는 이제 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