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교사에서 멀어지기, 나에게 가까워지기
수술을 받고는 하루하루가 빠르게 흘러갔다.
서울에 살고 있는 이모와 삼촌이 병문안을 와주셨고, 결혼을 앞두고 이런 큰일이 있는 것에 안타까워하셨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퇴원을 하자마자 나를 기다리는 것은 '1급 정교사 연수'였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이 싫었던 나는 무리한 일정인 줄은 알지만 현직 4년 차 교사가 받을 수 있는 연수를 신청했다.
(사범대를 졸업하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지고, 교직 경력이 3년 이상인 교사를 대상으로 연수를 통해 '1급 정교사 자격증'을 주는 연수이다.)
학교 선생님들은 모두 나를 말렸다.
'소정샘, 너무 무리한 일정인 거 아니야?', '좀 푹 쉬지.. 내년에 연수받아도 되는데..' 등의 걱정 어린 말들을 해주셨지만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수술 전에 신청해 두었던 연수를 퇴원과 동시에 연수 들을 준비를 했다.
퇴원을 하고, 예비 남편은 출근을 위해 내려갔다.
수술을 마친 뒤 나의 상태는 누울 때도 일어날 때도 쉽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수술 부위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되기에 샤워를 하기도 힘들었다.
일상생활을 할 때에는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어색했고, 수술 부위가 유착이 되지 않도록 돌아가지 않는 목을 운동시켜야 했다.
하필 7월은 무더웠고, 나는 더위도 많이 타는 사람이지만 연수를 받을 강의실을 시원했다.
목에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여름옷을 입으니 핑크색 밴드가 너무도 눈에 띄었다.
하필 살색도 아닌 분홍색 밴드라니...
강당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강의실로 이동하니 첫 수업에는 자기소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약 3주간 함께 해야 할 동 교과 선생님들과 서로를 소개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괜스레 목에 붙인 밴드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고, 모두에게 말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소정이고, OO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입니다. 최근 암 수술을 받아 목에 큰 밴드가 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연수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동 교과 선생님들께서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주셨고,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털어놓고 나니 왠지 후련했다.
그렇게 연수가 시작되었고, 한여름에 매일매일 연수장을 오가며 성실히 임했다.
다행히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연수를 받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고, 내가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듣게 되니 재미있었다.
수술 직후, 불편했던 고개도 이제는 꽤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고개가 적응이 될 때, 다시 병원에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병원에 가서 수술 부위를 확인하고, 징글징글했던 핑크색 밴드를 떼어냈다.
한층 후련하고 시원했다.
연수중 하루 수업을 빠지고, 병원에 들르니 나름 기분 전환도 되고 좋았다.
남은 수업들에도 정말 열심히 참여했다. 마치 내 교직 생활과 작별 인사를 하듯이.
연수를 끝으로 휴직이 시작되었고, 수술받고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나는 그동안 밀린 잠을 자듯이 매일매일 잠만 자며 시간을 보냈다.
남들은 결혼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는 것이었다.
푹 쉬다 보니 결혼식이 훌쩍 다가왔다.
수술도 받고, 1정 연수도 끝냈고, 이제는 결혼식만 남았다.
타 지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에 전날에 내려가서 하루 숙박을 하기로 했다.
결혼식 전날이 되었고, 나는 더없이 행복했다.
마치 모든 것이 내일이면 끝나는 듯했다.
힘들게 앞만 바라보며 달려온 교직 생활에도 쉼표를 찍고, 인생에서 큰 이벤트인 결혼식이 남았다.
결혼식 당일에도 긴장이 되기보다는 너무 기뻤다.
평소에 긴장을 잘하지 않는 남편은 오히려 긴장했다.
동시 입장이기에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입장했고, 결혼식 내내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결혼식날 가장 밝게 웃은 신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혼식까지 끝내고 나니 남은 것은 이사였다.
휴직을 했으니 남편과 떨어져서 지낼 이유가 없었고, 남편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정리하고 내려갔다.
이사까지 하고 나니 정말 쉼이 시작되었다.
출근하지 않는 일상이 어색했고, 이따금씩 연락하는 제자들의 졸업까지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당장은 체력 회복을 위해 잘 먹고 쉬기로 했다.
업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을 챙기는 대신 나를 챙길 수 있었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 보내는 일상이 낯설지만 또 신선했다.
그전에는 영 하지 않았던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귀찮아서 안 먹고 말았던 나는 이제 우리를 위한 요리를 한다.
아이들을 위해 움직였던 나는 이제 나의 건강을 위해 움직인다.
밀린 업무에 동동 거리던 발은 이제 여유롭게 길을 거닌다.
피곤해서 멀리했던 책은 이제 나의 일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교사에서 한 발 멀어져 이제는 '나'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당분간은 교사로서의 내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