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나는 자격 미달인 교사입니다.
결혼식도 끝냈고, 본격적으로 휴직 시간을 보냈다.
정말 잠만 잤던 것 같고, 이제는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아무것도 안 하나 싶을 때,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소정샘~ 잘 지내고 있지? 다름이 아니라 휴직 끝내고 복직 언제 할 건지 물어보려고. 기간제 선생님들 계약도 있어서 미리 파악해야 할 것 같아서."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저 남편이랑도 가족들이랑도 이야기해봤는데... 아무래도 면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랬구나. 아유 너무 아쉽네. 그래도 선생님 건강이 먼저고 가족들이 먼저니까. 교장 선생님께는 말씀드렸어~?"
"아직 말씀 못 드렸어요. 따로 연락드리고 찾아뵈려고요."
" 어, 그래요. 잘 지내고, 애들 졸업식 때 봐요."
교감 선생님과의 통화를 마치고, '면직'을 입 밖으로 이야기하니 정말 실감이 났다.
이제 정말 교직 생활을 마무리할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지 않은 교직 생활이었지만 집과 학교의 거리 문제도 있었고, 나의 건강 문제도 있어서 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내가 고집을 부리면 교직 생활을 더 이어갈 수는 있었겠지만 내가 근무하면서 체력이 좋지 않으면 무조건 폐를 끼치는 구조였기에 과감히 면직을 결정했다.
면직을 결정하고 나니 오히려 교직 생활이 더욱 선명해져 왔다.
치열한 기간제 생활부터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합격하기까지의 기간.
정교사가 되어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면서 아이들과 행복했던 시간.
행복해야 하는데 힘들고, 지쳐가는 내가 미워졌던 시간.
그리고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족들이 생겼던 순간까지.
아직은 교사라는 타이틀은 유지하고 있지만 곧 없어지게 될 이름.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나를 소개하기가 어려워졌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무슨 일 하세요?'하고 물어보곤 했다.
휴직 전이라면 '고등학교 교사입니다.'라고 바로 말했겠지만 이제는 망설이게 된다.
누가 봐도 한창 커리어를 쌓으며 바쁠 나이에 '쉬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참 좋아했던 내가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유일한 외출은 도서관을 가는 일이 되었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집안일도 하며 하루를 보냈지만 왠지 공허해지는 마음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직업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닌데,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직업을 빼고는 나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사직서를 쓰기 전까지 직업으로서가 아닌 '나'를 소개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을 회복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의 양식을 쌓는다며 책을 읽었다.
판타지 소설부터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들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보니 수업의 시작과 끝에는 아이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제는 학생들과 동료들이 아닌 타인에게도 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만 했던 내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가볍게 블로그에 나의 일상을 기록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다양한 글들을 올리고, 친구들의 일상도 보고,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분들의 블로그를 보면서 잔잔했던 일상이 조금은 풍요로워졌다.
블로그를 통해 나를 이야기하다 보니 '브런치'에도 내 글을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는 모두 할 수 있는 곳인 것 같았는데 브런치는 왠지 전문가들의 글쓰기 놀이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블로그는 아이템 하나도 없는 레벨 1 초심자의 터전이라면 브런치는 화려한 아이템들을 장착한 고레벨들의 놀이터 같았다.
신청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가 신청' 버튼을 누르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듯 내 이야기를 담았다.
정말 놀랍게도 브런치에서는 나에게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기회를 주었다.
이제는 교직 생활부터 면직까지의 일을 담아내기로 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고, 글쓰기를 배워본 적도 없었지만 꾸준히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블로그도 하고, 브런치에 글도 연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와 함께 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졸업식이 되었다.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정도 많이 들었던 아이들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도 함께 학교를 졸업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니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참 많은 감정들을 느끼게 해 주었던 교직 생활.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와닿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다양한 학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여전히 세상에는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
예전에는 방학 때 돈 받으며 펑펑 노는 직업이었다면, 이제는 버릇없는 학생과 비상식적인 학부모 민원으로 힘들고 보람 없는 직업이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직접 느끼고 경험한 교사는 달랐다.
방학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다음 학기를 위해 연수를 받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지난 학기에 빠뜨린 것은 없는지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버릇없는 학생은 늘 있었고, 비상식적인 학부모 민원도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예쁜 학생들이 훨씬 많았고, 아이들을 너무도 훌륭하게 키워내 본받고 싶은 학부모님들이 가득했다.
학교 생활에서의 의미 있는 기억들은 기사화되지 않고, 어쩌다 한 번 있을 것 같은 일들만 만연한 듯이 부각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이제 '자격 미달인 교사'이다.
휴직과 면직을 했으니 사실 교사가 아니게 되었다.
굳이 말하자면 '전직 교사'이다.
경력이 길지 않았기에 아이들에게 한없이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마음 한편을 내어준 아이들에게 참 고마웠다.
그리고 교직을 떠난 지금도 교사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많은 칭찬과 아낌없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 이들에게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