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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나

5-3. 오롯이, 나

by 로지

출근을 하는 시간에 집에 있게 되니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몰랐고, 딱히 취미도 없어서 고민이 되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전업 주부로서의 생활하기에 나는 집안일에 영 취미가 없었다.

해님보다도 더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나 출근할 때 안 일어나도 되니까 좀 쉬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배웅을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은 더 쉬라고 말했다.

하지만 며느리로서 아내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며칠을 더 일어났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왠지 배웅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 가치가 없는 듯 느껴졌다.


일상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나를 잡아준 사람은 남편도 아닌 시어머니였다.

막연히 결혼 그 이후의 삶을 그릴 때 항상 꿈꿨던 모습은 시어머니와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쇼핑도 하는 모습이었다.

주변 친구들도 이제 막 결혼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시댁과 어떻게 지내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온라인상에서는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를 거라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소정아~ 통화 괜찮아?"

"네, 어머님~"

"혹시 수요일에 뭐 하니? 시간 괜찮으면 밥 한 끼 할까?"

"좋아요!"


결혼까지 4-5번 정도 본 며느리가 어머님도 편하지만은 않으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님께서 먼저 조심스레 연락을 해주셨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던 나는 어머님과의 약속을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여름의 끝자락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모른 채 좋은 날들을 그저 흘려만 보내고 있었다.

어머님과 단둘이 하는 점심 식사는 생각보다 더 즐거웠다.

마냥 낯설었던 어머님과 점심을 먹으며 더 가까워졌고, 시댁 식구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점심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세 번이 되었다.

이제는 수요일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어머님과 점심 데이트를 하는 날이 되었다.


"어머님~ 내일은 삼계탕 먹으러 가요!"


이제는 내가 메뉴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님과의 대화하며, 나의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때? 출근하다가 안 하니까 서운하고, 허전하고 그러진 않아?"


이따금씩 어머님은 나의 마음을 들여다봐주시곤 하셨다.


"좀 아쉽긴 해요. 힘들게 합격한 시험이어서 뭔가 서운하기도 하고요."


"그렇지? 너도 선생님 되기까지 엄청 노력했을 텐데."


"네.."


"요즘은 뭐 하고 지내?"


어머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마지막에는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수요일에 어머님과의 약속을 해서 밥을 먹고 오는 날이면 남편에게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거 알아? 엄마 만나고 오면 엄청 목소리 커지는 거?"


남편은 내가 어머님을 만나고 온 날이면 내 목소리가 커진다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들뜨고, 왠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나 보다.

그저 어머님이 내밀어준 손을 잡고,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온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어머님과 대화를 하면서 나는 마치 상담받는 학생처럼 끊임없이 질문을 늘어놓았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집안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마치 담임 선생님을 처음 만난 학생처럼 어머님의 모든 것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굴었다.

말이 없는 아들과는 달리 말이 많은 며느리가 귀찮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나를 마냥 귀여워해주셨다.


어머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떤 대화를 했는지 다시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의 내 삶에 대해 그려보았다.


지금의 나처럼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며, 가족들을 위해 삶을 살아오신 어머님.

살아오면서 쌓인 지혜를 한순간에 습득하고 말겠다는 철없는 며느리.

이제 교사로서 학생을 위하는 내가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나.


소중한 일상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로 설 시간만이 존재한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오롯이 나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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