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내가 선생님?
조급함은 항상 절망감을 선물하곤 했으니,
꿈을 찾아야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은 영어의 늪에서 조금만 더 허우적거리기로 했다.
마냥 방황하기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생 때의 나처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사범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교육 봉사를 일정 시간 이상 이수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 근처에 내가 봉사할 수 있는 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봉사는 나에게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일이었기에 큰 망설임은 없었다.
문득 친구가 학교 근처 아동센터에서 봉사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센터 선생님의 연락처를 받아 봉사할 수 있는지를 여쭤보고 약속을 잡은 뒤,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누구세요?"
지역아동센터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개구진 미소를 띤 아이는 나에게 다가왔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아이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영어 수업을 함께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의 수업이 시작됐다.
많은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수업만 시작하면 아이들과 나의 전쟁은 시작됐다.
“얘들아, 책 가져와야지?”
“야 어디서 무슨 소리 들리지 않냐?”
“아니? 안 들리는데?”
“오늘 공부 조금만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왕창 해야지”
수업은 항상 아이들과 나의 귀여운 협상으로 시작됐다.
막상 시작하면 곧잘 해내는 아이들에게도 책을 가지고 와서 자리에 앉는 것은 너무도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다.
간신히 알파벳을 읽어 나가지만 조금 어려운 단어들을 마주할 때면 곧잘 딴짓을 했다.
왜인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지만 잘하지 못해서 포기한 것 같았다.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조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 아이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영어를 좋아할 계기가 없었던 것 같으니.
"OO아, 잠깐 선생님 옆에 앉아볼래?"
"아 왜요.."
"혹시 영어 싫어하니?"
"당연하죠. 진짜 싫어요. 우웩"
"그렇지? 솔직히 좀 어렵긴 하지?"
"네"
"그러면 조금씩만 해보자. 한 번에 많이 안 해도 돼. 조금씩 시작해 보자!"
다른 아이들과 함께하는 공부임에도 그 아이에게는 무리한 공부를 요구하진 않았다.
그렇게 그 아이와는 수업 속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따로 보충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단어부터 천천히 공부하고, 쉬운 문장들을 조금씩 익혀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 시험기간이 지나고 아이들의 시험 기간도 지났다.
아이들의 일상이 궁금해졌을 즈음 다시 센터에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 되었다.
"쌤!! 쌤!! 저 영어 80점 넘었어요!!"
영어 공부에 흥미가 없던 아이가,
책을 가지고 와서 앉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아이가,
수업하러 온 나를 마주치면 도망을 치던 아이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시험 성적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그 뒤로 아이는 영어 시간이 되면 가장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때였던가? 내가 정말로 선생님이 되었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
그렇게 나는 선생님이 되었다.
<작가의 말>
선생님이란 아이들보다 먼저 삶을 살아가며 방향을 제시해 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잘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성숙하지 못했던 나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요!"라고 대답을 했다.
교사가 된 지금은 "아이들이 스스로 설 힘을 주는 어른"이라는 다른 대답을 생각해 보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선생님의 영상을 보았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 교실 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하고 들어가는 선생님의 모습.
이제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
아이들을 마주하기 전 잡념을 내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 넣던 나의 모습이었다.
오늘도 꿈꿔본다.
어른의 현실을 아직은 아이들이 마주하지 않기를.
아이들의 성숙함이 무르익을 때 그들의 꿈이 현실이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