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6일 차 에스떼야~토레스 델 리오 29km
Camino de Santiago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순례자들은 통상 하루에 20km~30km를 걷는다. 한 시간에 보통 4km를 걷는다고 가정하면 하루 최소 5시간 이상은 걷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함께 걷는 파트너는 그 길의 호불호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혹은 혼자 걷거나.
만약 원치 않는 친구와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면 그런 스트레스도 없다. 사람을 거의 보기 힘든 스페인 시골길을 혼자 걷는 건 또 외롭기 그지없다.
무언가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
나쁜 게 있다면 꼭 좋은 점도 있다.
에스테야 공립 알베르게 아침 6시 30분. 어제 벨기에인 팀, 대만인 마틴, 그리고 국적이 기억나지 않는 어여쁜 올리비아와 함께 늦은 시각까지 와인을 마셨더니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었다.
하지만 순례길 6일 차가 되니 그새 날씨가 바뀌어 해가 뜨는 순간부터 찌는 듯한 더위가 시작되고, 아직까지 예쁜 일출 한 번 못 봤다는 게 억울해서 바바라, 프라와 오늘은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6-7kg 배낭을 메고 하루 종일 걷는다는 건 쉽지 않다. 6일 차이지만 어깨 통증이 심해져서 동키 (목적지까지 배낭을 옮겨주는 딜리버리 서비스)를 보내기로 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출발하려는데 바바라가 잠깐 로지, 이것 좀 봐봐 하면서 보여준 거 = Rosie Checklist....
지금까지 거의 동고동락하고 있는 바바라가 내가 자주 흘리고 다니는 것들 (스틱, 장갑, 모자, 물병, 삼각대, 재킷 등...)을 이렇게 정리해 놨다. 뒤에선 프라가 영상을 찍으며 신나게 웃고 있고.
셋이서 눈물 나게 웃다가 문득 이 먼 타지에서 프로페샤날이니 카리스마 팀장이니 다 내려놓고 칠칠맞기 그지없는 김로지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워 울컥했다.
이렇게 새벽에 길을 떠나는 건 처음인데 저 멀리 마을의 불빛이 반짝이는 별들처럼 빛난다. 날씨는 살짝 쌀쌀하다가 좀 걷다 보면 금세 더워지기 때문에 바람막이를 정리하는 순간 또 약봉지를 흘렸다고 한다.
걷기 시작한 지 30분 만에 순례자들 사이 핫이슈였던 보데가 이리아체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와인을 나눠주는 기가 막힌 와이너리. 다들 물병에 와인을 담아가고 걷는 동안 술을 자제하겠다는 나는 한 모금 정도를 마셨다. (어제 넷이서 와인을 세 병이나 마시지 않았다면 나도 담아갔겠지..)
얀이나 마틴, 또 익숙한 얼굴들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곧 청소가 필요하다고 무료 와인 제공이 중단됐다. 운이 좋았다.
프라는 와인의 샘에서 먼저 출발하며 오늘 39km를 가보겠다고 했다. 나는 며칠 전 함께 망친 코리아 바비큐를 즐겼던 바바라, 마틴과 함께 걷는다.
이제 6일 차 정도가 되니 꼭 모두가 함께 걷지 않고 본인의 페이스대로 걷는다. 함께 걷다가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일부러 뒤처지거나, 캐나다와의 시차 때문에 통화할 시간이 새벽 일찍인 바바라는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하며 천천히 뒤따라오는 패턴도 생겼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일출은 놓쳤다. 깊은 산속을 빠져나오니 이미 해가 떠있어서 다음 기회로.
180cm가 훌쩍 넘는 마틴, 숲 속을 걸을 때 거미줄이 방해해 마틴을 앞세우니 거미줄이 다 걷혔다.
아침엔 후드에 레깅스까지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한데 해가 뜨자마자 더위가 시작된다. 까미노를 시작한 4월 중순에서 단 6일이 지났는데도 하루아침에 날씨가 바뀌어버렸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선글라스도 챙겨갔었지만 이 장대한 풍경들을 놓치기 싫어 끼지 않았고, 걷는 동안은 해가 뒤에 있어 참 다행이었다.
벌써 21km를 걸었는데 새벽같이 출발했더니 로스 아르고스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11시도 안 되었다.
걷기 시작한 지 4시간째, 몸속엔 어제 잔뜩 마신 와인이 아직 남아있어 청양고추를 가득 넣은 라면이 간절했지만 잠시 멈춰 빵과 음료로 아침을 때웠다. 앞으로 과음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바바라는 이미 우리를 추월한 지 오래이고 오늘 하루는 어쩌다 보니 마틴과 계속 걷고 있는데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고 할 말만 하는 대만인이었다. 대만의 이혼율, 한국의 출산율, 유교 사상 등 아시안끼리 나눌 수 있는 대화를 필요 이상으로 하지 않으며 함께 있는 듯 없는 듯하며 걸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30km 가까이 걷는 날, 편도 30km는 내 출퇴근 거리였는데. 막히는 아침 시간에는 차로만도 꼬박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근데 지금 그만큼을 내 두 발로 걷고 있다니 믿기질 않았다.
맞은편에서 역방향으로 걸어오던 할아버지 순례자 앞으로의 길을 설명해 주며 손을 잡고 모비야키(?)라는 축복의 기도를 해주셨다. 인생의 좋은 길이 되라는 뜻이라고 하시길래 한 번 더 해달라고 하니 한 번으로 충분하다고 하신.. 축복 기도도 2번 받고 싶은 욕심쟁이가 맞다.
오늘의 목적지인 토레스 델 리오는 유명한 마을은 아니었다. 보통 출발지였던 에스테야에서 21km 떨어진 로스 아르고스 혹은 토레스 델리오 800m 전 산솔에서 주로 거처를 정하는 듯했다.
우리는 뭐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토레스 델 리오로 목적지를 정했었고 저 멀리 양 옆에 마을이 하나씩 있어서 마틴이랑 뭐가 토레스 델 리오인가 내기했고, 이겼다.
약 6시간 동안 내리 걷고 있는 나, 햇빛까지 더해져 너무 지치고 힘들지만 스페인 시골길을 언제 또 이렇게 걸어보겠나 싶고 마을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그래도 4km 정도는 남았다.) 힘을 내본다.
12시 45분경, Casa Mariela Hostel 도착. 체크인하는데 간간히 마주쳐왔던 아일랜드인 데릭을 만났다. 어느 마을에서 출발했는지 물어오는데 까먹어버린 나. 걷는 동안 수많은 마을을 지나고 낯선 이름들이라 흔히 있는 일이다.
약 12개의 나무 베드가 있던 아늑한 알베르게, 짐을 푸는데 갑자기 발 쪽이 간지러우면서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먼저 도착해 있던 옆 베드 바바라에게 베드버그인 것 같다고 걱정하니 침대 매트리스를 모두 살펴주고, 발을 자세히 보더니 베드버그는 아니고 하이킹을 오래 하면 그럴 수 있다며 안심을 시켜줬다. 세상 씩씩한 줄 알았더니 순례길에서 자꾸 겁 많고 여린 나를 마주하는데, 그럴 때마다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됐었다.
내기에서 진 마틴이 맥주를 사서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와 최애 하몽을 까먹었다. 이 순간은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정말 작은 마을이었던 토레스 델 리오는 둘러보는데 10분이면 충분했다. 4시 30분에 마을에 딱 하나 있는 역사적인 성당 투어가 있다길래 다 같이 갔더니 봉사자분의 스페인어 설명을 알아들은 순례자가 영어 번역을 도왔다.
그 순례자는 은퇴한 이탈리아 변호사였던 지오반니, 그는 평생을 일에 매진하다가 은퇴 후 순례길을 찾아왔는데 우리에게 오늘 길에서 만난 달팽이 사진을 보여주며 아이처럼 재밌어했다. 작은 기쁨과 행복들로 가득 찬 이 나날들을, 어쩌면 앞만 보고 달리다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식당 하나 없는 작은 마을이었기에 숙소에 13유로를 내고 커뮤니티 식사 (모두가 함께 순례자 메뉴를 즐기는 식사)를 신청했다.
웬걸 여기서 그간 마주쳐왔던 얀, 핏짜, 데이빗, 빈센트, 에릭 등 또 모두를 만나 신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옆 자리 핏짜는 생장 순례자 사무소 앞 배낭을 줄 세웠을 때부터 마주쳤던 독일인이었는데, 그간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다가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순례길 어떠냐는 내 질문에 많이 힘들고 사실 지금까지도 여러 번 울었다며, 마음이 복잡하다는 그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21살밖에 되지 않았던 핏짜 (이름이 사실 핏짜가 아니었다. 발음이 비슷해서 내가 핏짜라고 불렀을 뿐)는 대만인 마틴에게는 칸토니즈를 사용하는지 묻고, 한국 정치에 대해 물어보는 등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로지, 한국 대통령이 지금 누구지?"
"어........... 그게...... 잠시만"
"너 지금 너네 나라 대통령을 모르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지금 한국을 끊었거든?"
머리가 하얘지더니 2023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 이름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생각해 보니 이 여행을 시작하고 한국과 단절되어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네이버조차 키지 않은 나였다. 오늘 하루는 길에서 한국인을 만나지 못해 모국어도 사용하질 못했다.
누굴 바보로 아는 핏짜에게는 멋쩍었지만 아주 깊숙이, 이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